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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ha Sep 21. 2022

연기 (6)

  그날 저녁, 진호의 소주잔을 가득 채우며 물었다.

  “그래도 팀 분위기는 좋잖아. 팀장님도 좋은 분 같고. 나도 잘 챙겨주시던데.” 

  “뭐, 이 팀장님하고 평생 갑니까? 이상한 팀장들도 많아요. 아무튼, 저는 반댈세. 다시 하라면 전 공무원 안 해요, 안 해. 지금 형님이 저보다 많이 받는 거 아세요? 저 기본급이 작년까지 200이 안 넘었어요. 초과를 좀 해야 200을 넘고요. 형님은 공무원 말고 유투버 같은 걸 해보면 어때요? 형님 목소리도 그렇고, 말투가 조곤조곤해서 어울릴 것 같은데.” 진호는 내 목소리를 조그마하게 흉내 내며 혼자 큭큭 거린다. 


  취기가 좀 오르자 진호는 이내 진지한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군대를 다녀오기 전까지는 그저 좋았다고 했다. 남들보다 빨리 월급을 받기 시작하고, 가난한 대학생 친구들에게 술도 자주 사며 생색도 내고. 근데 군대를 다녀오고 머리가 좀 커지면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더란다. 남들은 다 경험해보는 캠퍼스 생활에 대한 로망도 포기하며 들어왔는데, 실제 손에 쥐어지는 것이 너무 쥐꼬리만 하다고. 그래서 요즘에는 자신의 가능성을 너무 일찍 포기해버린 것 같아 후회된다고 했다. 


  “공무원으로 임용되면요, 내가 평생 일해서 벌 수 있는 돈이 딱 정해져 버려요. 정년까지 호봉이랑 계산하면 대강 계산이 서거든요. 아무리 열심히 하고 잘해봤자 큰 차이가 나지 않아요. 그렇다고 부동산에 투자하기엔 시드가 없고. 그냥 쥐뿔도 없는 공무원이 부자가 되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3가지밖에 없어요. 복권, 주식, 코인.”


  그러면서 진호는 2천만 원 정도가 코인에 물려있다고 했다. 그 흔한 대리나 배달도 못 하기에 뭔가 부수입을 만들어보려고 뒤늦게 코인을 건드렸는데, 그저 ‘존버’ 하는 신세가 되었단다. 그래서 이런저런 잡생각이 많은 상황에, 은근히 고졸 출신이라고 무시하는 다른 직원들의 눈초리도 견디기 힘들다며 내게 속풀이를 한다. 차라리 부모님께 내려가 농사짓는 것이 마음이 편하겠다나.


  나보다 어린 친구지만, 나보다 몇 발자국이나 앞선 고민들을 들으며 차마 되묻지 못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월급을 얼마나 받는가 와는 상관없이 결코 부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냐고. 아마 죽을 때까지 일을 해봤자 서울에 아파트 한 채 마련하는 것은 요원하다고. 현실이 그런 것을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냐고.      


  예전엔 그냥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누구나 무난하게 취업하고, 결혼도 하고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모두 허상임을 안다. 적어도 내 스펙으로는 대기업은 꿈도 꾸지 못한다. 내 ‘노오력’이 부족한 탓일까? 아니면 이제는 오를 사다리가 점점 없어지기 때문일까? 그나마 공무원 시험이라는 사다리는 아직 남아있으니 거기라도 올라보려 했는데 막상 곁에서 지켜보니 이것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나저나 민수는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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