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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ha Sep 21. 2022

연기 (4)

  “엄마. 나 내일부터 출근해.”

  “응? 무슨 출근? 뭐 갑자기 어디 취업이라도 됐어?”

  “아니, 취업은 아니고... 시청에서 인턴을 뽑는다길래 지원했었어. 요즘엔 취업하려면 인턴 같은 경력도 필요하다고 해서. 혹시 아침에 나 못 일어나면 좀 깨워줘.”

  “그~~래!? 시청에서? 잘됐네. 잘했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엄마는 그새 방으로 들어가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문 사이로 슬쩍 들려오는 이야기들에 귀가 간다. 신변잡기와 알맹이 없는 이야기들 뒤에 아들이 시청에서 일하게 됐다고,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는데 면접이랑 이런저런 도움이 될까 싶어 해 본다는 엄마의 은근한 자랑이 들린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 엄마는 내가 공무원 시험을 봤던 것을 알고 계셨을까? 아니면 그냥 하시는 말씀일까? 하긴 시험에 합격만 한다면 부모님은 좋아하시겠지. 그래도 시청에 다닌다면 주변에 자랑거리도 되고. 적어도 실패한 인생이란 소리는 듣지 않겠지. 진짜 노량진이나 가볼까? 아냐, 아니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괜히 말을 꺼내는 것은 좋지 않다. 시험 결과를 듣고 실망하실 어머니의 표정이 보지 않아도 선하다. 설레발은 필패다. 역시 그냥 조용히 있는 것이 최고다.      


  유리로 된 외벽이 반짝반짝 빛나는 시청 건물은 마치 고급 빌딩을 연상시킨다. 고등학생일 시절 호화청사를 건립하니 뭐니 하면서 해서 말이 많았던 것이 얼핏 생각난다. 가슴께에 무엇인가 사원증 같은 것을 걸고 있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나만 뭔가 어색하게 멈춰있는 느낌이다. 막상 여기서 일을 한다는 마음 때문인지 그전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손님으로 가서 홀에서 바라보는 음식점과 치열하게 일을 하는 주방에서 보는 음식점의 풍경이 서로 다른 느낌이랄까.


  냉랭한 복도의 냉기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선 문자로 안내받았던 일자리과를 찾았다. “안녕하세요! 김한별 선생님 되시죠?” 하며, 넉살 좋은 웃는 낯의 젊은 친구가 말을 건다. 이름은 진호라 했다. 25살의 8급 주무관.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그냥 형이라 부를게요!” 살갑게 다가오는 모양새가 꼭 민수를 떠올리게 한다. 덕분에 조금은 얼어있던 내 정신이 조금은 돌아오는 것 같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진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진호는 고졸 채용으로 20살부터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고선, 얼마 전 군대를 다녀왔다더라. 그런데 하필 32사단, 내가 있었던 부대다. 더군다나 근무지까지 똑같았다. 항상 깐깐하게 굴어서 병사들에게 욕을 먹던 붙박이 보급관이 여전히 잘 지낸단다. 최 상사가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이런 곳에서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진호와 함께 최 상사가 만수무강하길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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