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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ha Sep 21. 2022

연기 (3)


  “장항동 테라스 카페 앞에서 7시에 보자.”      


  민수에게 연락이 왔다. 시간 부자라고 하더니만 뭘 하고 다니는지 바빴던 모양이다. 요즘 유행한다는 인스타 감성의 멋진 테라스 카페 주차장에는 음악이 크게 틀어져 있는 민수의 보물 1호가 보인다. 민수는 차에 삐딱이 기대어 서서 인상을 쓰며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내가 온 것도 모르는 것 같아 민수를 불렀다.


  “저기요? 계세요?”

  “여~ 왔냐. 잠깐만 기다려봐.”

  “왜 밖에 있어? 들어가서 기다리지. 커피 마시자는 거 아냐?”

  “인마, 오늘 같은 날 좋은 데 가야지. 은계동이 요즘 물이 좋단다. 형이 밀린 월급을 드디어 받아냈다! 거기에 인센도 빵빵하게!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X랄을 해야 말을 듣는다니까.”

  “은계동까지 갈 거면 차라리 집에서 날 태워 가지 그랬어.” 

 민수는 목적지를 정했는지 그제야 운전석에 앉았다.

  “한별이는 역시 낭만을 모르는구나. 야, 일단 형님만 믿고 따라와. 형 말만 잘 들으면 자다가도 꿀이 떨어지는 법이야.”


  베이스가 빵빵한 클럽 음악에 차가 덩달아 울린다. 민수는 음악에 맞춰 고개를 흔들며 창문에 걸친 손을 두드린다. 부아앙 하는 큰 배기음 소리가 울리면 다른 차들이 우릴 피해서 길을 비켜줬다.

  “야. 근데 이거 유지가 되냐? 차 굴리는 데 돈 좀 들지 않아?”

  “오구오구, 한별이가 형 걱정해 주는 거야? 인마 사회 나와봐라. 차야말로 최고의 명함이야. 개 같은 출근길도 이 놈하고 함께면 기분이 좋아지고, 여자 만나기도 편하고. 얼마나 좋냐?”

  때마침 ‘월 28만 원이면 당신도 마이카 실현!’ 따위의 현수막이 스쳐 지나갔다. 

  “저기 저거 봐. 요즘엔 자동차 회사들도 경쟁이 치열해서 소비자한테 이런저런 혜택을 많이 주거든. 외제 차 뽑아도 한 달에 100만 원이면 충분하지.”

  “야. 한 달에 100만 원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야 인마. 다 늙어서 벤츠 타면 뭐 하냐?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타면서 느낄 수 있는 경험들이야말로 진짜 중요한 거지. 지금도 봐라. 모세의 기적! 나중에 나이 먹으면 지금 이 감동을 못 느낄걸? 왜 그런 말 있잖아. 욜로 모르냐? 욜로?”

  하긴 어쩌면 민수의 말대로 그냥 현실을 즐기며 사는 것이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결과가 무서워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그저 미루는 것보다는.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니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민수의 보물 1호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주점 근처에 주차 자리가 날 때까지 번화가를 빙글빙글 돌았다. 차라리 조금 멀리 주차하고 걸어오는 것이 더 빠르지 않았을까 싶다. 커다란 음악 소리에 우리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나는 조금 불편하기도 했고. 민수는 바로 내리려는 나를 제지했다. 그리곤 전화를 하는 척 핸드폰을 들고는 통화하는 척 주변을 살핀다. 


 “야, 잘 보고 배워. 쟤네 괜찮지? 그치? 마침 저기 들어가네. 야! 가자!”

  민수는 잠시 눈이 마주쳤던 빨간 카디건을 걸친 아가씨 무리가 감성주점에 들어가자, 그제야 내게 내리자고 한다. 아무래도 민수에겐 차에서 내리는 타이밍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시끄러운 음악으로 가득 찬 술집은 큰 소리로 말해야 겨우 목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늘 그렇듯이 민수의 첫사랑 예림이를 찾다 보니 자연스레 술이 넘어갔다. 예림이는 우리의 입에 여전히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알기는 할까? 이 이야기는 아마 우리가 죽기 전까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시간이 무르익자 업소 한편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드라이아이스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천장에 달린 커다란 미러볼에서는 화려한 불빛들이 쏟아져 나와 눈을 어지럽혔다. 민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곧 한쪽 테이블을 향한다. 아까 그 빨간 카디건 아가씨가 있는 무리다. 실컷 무어라 연신 떠들더니만 이내 자연스럽게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주거니. 받거니. 취기가 슬슬 올라올 때쯤 여자들이 화장실을 갔다.


 “봤냐? 형이 아까 여기 들어오기 전에 다 설계한 거야. 그나저나 쟤네는 3명이라... 짝이 안 맞아서 좀 그렇다는데...” 

 민수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말끝을 흐렸다.

 “난 괜찮아. 여자에 별로 관심도 없고.” 

 “짜식...! 역시 우리 한별이밖에 없다! 다음엔 형이 밀어줄게!” 


  뭐가 그리 급한지 민수는 여자들이 오기도 전에 두 테이블을 모두 계산을 마쳤다. 그리곤 테이블 위에 자연스레 올려뒀던 차 키를 챙기곤, 빨간 카디건과 팔짱을 끼고 가게를 나간다. 나는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결혼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 에너지 낭비 따위를 하고 싶지 않다. 당장 내 상황에 무슨 연애란 말인가? 애초에 책임질 일은 만들지 않는 것이 편하다. 그렇게 나는 가게를 나와 홀로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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