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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ha Sep 21. 2022

연기 (7)

  첫 월급은 부모님의 내복과 출근하면서 입을 옷을 몇 벌 샀더니 연기처럼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두 번째 월급을 받아서야 민수를 불러낼 수 있었다. 확실히 여유로운 마음은 두꺼운 지갑에서부터 나오는 것 같다. 민수는 어쩐 일인지 보물 1호를 두고 뚜벅이로 나왔다. 


  “이야. 요즘 조용하더니만 어떻게 시간이 나셨어?”

  “월급날이라서? 나도 한번 사야지. 너한테 그동안 얻어먹은 게 얼만데.”

  “한별이가 머리 검은 짐승을 탈출하는구나!! 그동안 열심히 먹인 보람이 있네!!” 


  과장스레 반응하는 모양새가 어째 어색하다. 그러고 보니 얼굴색도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지글지글 구워지는 삼겹살과 함께 테이블에 소주병이 좀 쌓이자 민수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와. 진짜 짜증 나. 사직서를 썼다고 실업급여를 못 준다네? 고용센터 찾아가서 난리치고 왔는데 씨알도 안 먹힌다.” 

  “응? 지난번엔 임금체불은 그냥 된다면서?” 

  “그것도 두 달 이상 밀려야 하나 봐. 아니 무슨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돈도 안 받고 봉사를 해야 해?” 민수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좀 쉬며 천천히 직장을 알아보려 생각했는데, 그게 꼬여버리는 바람에 밀린 월급과 인센티브로 받았던 돈은 석 달도 안 되어 사라졌단다. 급한 마음에 동네 조그마한 회사에 잠깐 출근도 했었지만 이틀 만에 그만두었다고 했다.


  “아니, 비싼 차 탄다고 눈치를 주더라고. 내가 내 돈 들여서 타고 다닌다는데 그 사람들이 뭐 보태줬나? 남이사 죽든 말든, 똥차를 끌든 무슨 상관이야. 분명 거긴 꼰대만 가득할 게 분명해.”

  민수는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며, 월급도 그저 그런 곳에서 남들 눈치 보면서 일할 바에는 차라리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겠단다. 그러면서 은근히 내 눈치를 보더니만 자연스러운 척 말을 꺼낸다.

  “야, 그래서 말인데, 나 한 50만 원 정도 빌려줄 수 있냐? 얼른 다시 일 시작해서 갚을게. 여차하면 차 팔아서 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응? 부탁 좀 하자.” 

  항상 자신감 넘치고 밝던 민수의 눈빛은 그날따라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민수가 걱정되기도 하고, ‘뭐 어차피 그 돈 없이도 잘 살아왔는데’ 하며 민수에게 100만 원을 이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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