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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ha Sep 21. 2022

연기 (8)

  “... 필수인력을 제외한 모든 직원은 전원 14:00까지 시청 광장의 버스에 탑승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관내 국서봉 인근 산불 발생으로... ” 노이즈와 함께 청내방송이 울렸다. 

  “산불은 소방관들이 가는 거 아냐?” 나는 의아한 듯 진호에게 물었다.

  “큰 불은 헬기랑 소방관들이 끄는데, 잔불 정리는 우리가 해야 해요. 아... 내일 돈 나갈 거 준비해야 하는 데 큰일이네. 비상근무 끝나고 와서 바로 작업할 수 있게 출근부랑 지출서류 오는 거 정리만 미리 좀 해주세요.” 


  진호는 어디선가 등산화를 꺼내 들면서 말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사무실의 절반 이상이 자리를 비웠다. 유난히 건조하고 바람이 센 날씨 때문인지 산불이 잡혔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누군가가 켠 TV 속에서 헬기가 몇 대 투입되었다는 등 산불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넘실거리는 불길과 함께 까만 연기가 하늘에 가득하다. 저기 어딘가 진호가 있는 걸까. 그날 퇴근 시간이 다 되도록 진호는 사무실에 돌아오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부터 사무실이 소란스러웠다. 팀장님은 과장님과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같은 팀 주사보는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물어보니 진호가 어제 잔불 정리에 투입되었다가 그만 불길 속에 갇혔었다고 한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연기를 들이마시는 바람에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형님~! 저 진짜 죽다 살아났습니다. 와~ 진짜 불 무섭대요, 전화 많이 오죠?” 오전에 진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애써 밝은 척을 하는 것이 티가 난다.

  “일단, 급여는 사정상 조금 늦어진다고 해주세요. 아직 정신이 없어서... 큼큼... 제가 메일 주소 찍어 드릴게요. 형님이 기본적인 것들만 체크해서 넘겨주시면 여기서 작업해야겠어요. 팀장님껜 말씀드려놨어요.” 진호는 연신 콜록거리면서도 뭐가 그리 급한지 빠르게 이야기를 한다.

  “야. 지금 그런 상황인데, 거기서도 일을 해야 해? 그냥 쉬어야지.” 


  걱정스레 물어봤지만 대직자가 없어서 어쩔 수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업무분장에는 분명 정부 담당자가 있긴 한데, 각자 맡은 업무가 워낙 세분화되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고. 저번에 얼핏 이런 근무 나가면 시간당 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고작 만 원에 목숨 값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일까? 물론 그런 위험한 일은 거의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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