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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ha Sep 21. 2022

연기 (10)

  코가 시린 계절이 다가왔고 나의 길지 않은 행정 인턴 기간도 끝났다. 진호는 다행히도 별다른 후유증 없이 건강하게 퇴원했다. 그리곤 내년부터 대학 다녀볼 요량이라며 면직을 신청했더란다. 일을 병행하며 야간대학을 다니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자칫 이도 저도 아니게 될 것 같아 배수진을 쳤단다. 졸업 후에는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과 농사를 지을 거라고.


 “형님! 식량이 미래라고 하잖아요. 제대로 배우고 준비해서 성공한 청년 농부가 무엇인지 보여줄게요!! 두고 보세요!”


  하긴, 곁에서 바라본 공무원은 내가 가지고 있었던 막연한 상상과는 상당히 다르긴 했다. 아마도 지난 산불 사건의 영향일지도 모르겠고. 그럼에도 새로운 도전을 하는 진호의 모습을 보며 새삼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튼튼하고 안전한 울타리를 가지고서도 불확실한 울타리 밖을 선택하는 것. 아직 울타리를 가져보지 못한 나로서는 어떤 기분과 심정일지 상상이 잘 되지는 않지만,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자극이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공무원 시험이라는 나의 선택지는 점점 희미해졌다. 늘 그래 왔듯, 내 미래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민수와는 그날 이후 조금 데면데면했었다. 입이 걸걸한 것이야 원래 그랬다손 치더라도, 다른 친구들에게도 돈을 빌렸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오니 어떤 얼굴로 대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오히려 괜히 채근하는 것처럼 보일까 걱정되기도 했었고. 민수 역시 내게 빌렸던 돈이 부담스러웠는지 연락이 뜸했다. 그러다 몇 달 만에 갑작스레 전화가 온 민수의 목소리는 여전히 당당하기만 했었다.


  “넌 형이 바빠서 깜빡하고 있었으면 진즉 달라고 좀 하지. 바빠서 깜빡 잊고 있었네. 계좌 좀 보내봐. 우선 이자라도 좀 보낼게!”

  “이자는 무슨... 내가 어디 돈 쓸 곳도 없고 천천히 줘도 괜찮아. 뭐 하느라 그렇게 바빴어?” 

  “형은 다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다는 거 모르냐? 그런 게 있어, 인마. 나중에 잘 되면 다 말해줄게. 얼른 계좌번호나 불러.”

  “됐어. 차라리 술이나 한번 사.”

  “인마, 형이 준다고 하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거야.”


  민수는 우격다짐으로 이자라면서 30만 원을 부쳤다. 그리곤 원금은 곧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돈은 어디서 나온 돈이었을까? 차라리 그냥 안 받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민수의 어머니께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나는 면접 때 입으려고 샀던 정장을 꺼내 입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 커다랗고 각진 병원 건물이 낯설다. 나는 심장이 계속 두근거려 담배를 입에 물었다. 피어오르는 담배연기가 눈에 들어갔는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래. 연기 때문이다. 우르르 흡연구역으로 몰려나온 사람들 사이에서 교통사고, 정비 불량 따위의 이야기들이 들려오자 마음이 더욱 착잡해진다. 휘휘 사방으로 흩어지는 연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나를 재촉하듯, 그림자는 점점 장례식장 입구를 향해 늘어졌다.      


  방명록 한 켠에는 민수의 첫사랑 예림이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제 다시 예림이 이야기를 할 날이 있을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곧 고개를 흔든다. 올곧게 하늘로 향하는 하얀 연기가 이내 흔들렸다. 사진 속 민수는 뭐가 그리 좋은 건지 활짝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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