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두 발만 필요하다던 러닝은, 과연 장비빨

소비 불변의 법칙

by 진다락

새벽 미라클 모닝 50일 차.

쓰고 보니 '50'이라는 숫자의 무게가 더 크게 다가온다. 괜히 뿌듯하다. 남들처럼 거창한 목표의식이나 대단한 의지로 이루어진 건 결코 아니다. 운동과 다이어트라면 포기의 대명사였던 내가, 어떻게 50일 동안 새벽 러닝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을까.




누군가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난 늘 "음악 감상"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진지하게 감상한다기보다, 그냥 일상에서 음악을 즐겨 듣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그 시절을 지나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는 한정된 시간 안에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시작한 첫 번째 취미가 독서였다.

월급날이면 꼭 서점에 들러 책을 고르고, 그 시절 내 마음에 딱 들어맞는 책을 사는 것이 나만의 '작은 의식'이었다. 책은 나를 위로했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건너게 해 주었다. 독서는 지금까지도 가장 꾸준히 이어온 취미다.


다음은 뜨개질이었다.

학창 시절 목도리 뜨기만 알던 내가, 유튜브로 공부해 딸아이의 가디건까지 완성했다. 바늘 끝에서 실이 형태를 갖춰가는 모습이 묘하게 짜릿했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바늘 수집가가 되었고, 지금은 더 숙련된 엄마에게 바통을 넘겼다.


그다음은 식물.

언니가 나눠준 한 화분이 시작이었다. 물을 주고, 흙을 갈아주고, 햇빛을 쬐어주다 보면 어느 날 작고 연한 신엽이 피어난다. 그 순간이 그렇게 신비로울 수 없었다. 그렇게 내 통장은 그렇게 식물에게 헌납됐다.


그리고 지금, 러닝.

아직 취미라 부르기엔 고통과 즐거움이 반반이지만 더 멀리, 더 오래 뛰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 걸 보면 분명 나는 즐기고 있다. 이제는 다이어트를 위한 러닝이 아닌 러닝을 위한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아.. 그냥 러닝만 하고 있나...)


많은 사람들이 러닝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말한다. "러닝은 두 발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다 거짓말이다. 두 발만 있으면 안 된다. 발에는 기능성 운동화, 팔에는 땀을 잘 흡수하는 러닝 티셔츠, 머리에는 햇빛을 가려줄 모자, 귀에는 빠지지 않는 골전도 이어폰..... 러닝을 더 편하게 하려면 '러닝 역세권'으로 이사까지 가야 한다는 말이 농담 같지 않다.


이렇게 장비가 하나둘 늘어날수록, 나는 어느새 새벽 공기 속에서 '오늘은 새 워치 테스트 날'이라며 집을 나서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쯤 되면 러닝을 하는 건지 장비 시연회를 하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장비들이 나를 매일 새벽 거리로 끌어내고 있다는 사실다. 그중에서도 운동화를 샀던 날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나는 늘 운동화를 고를 때 발 사이즈와 디자인만 보고 골랐지, 기능을 따져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러닝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나서는 쿠션감, 지지력, 경량성 같은 낯선 단어들을 비교하며, 유행이 아닌 내 발에 잘 들어맞는 운동화를 고르고 있었다. '달리기'라는 이유로 처음부터 끝까지 따져보고 선택한 그 한 켤레는 단순한 신발이 아니라 나를 앞으로 더 멀리 데려다줄 동반자 같았다.




아직 초보 러너지만, 이렇게 나를 위해 투자하는 기분이 꽤 좋다. 다만.. 제발 이 투자가 '서랍 속 장비 박물관'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다행히 이번엔 혼자가 아니다. 남편과 함께 러닝이라는 취미를 나누고 있으니 말이다. 주말이면 러닝 관련 도서를 함께 고르고 읽는다. 사실 나는 예전부터 남편과 취미를 함께 하고 싶었고, 특히 그게 '독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러닝 덕분에 그 바람이 뜻밖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뛰고, 읽고, 이야기 나누는 이 시간은 단순한 운동 이상의 의미를 준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채우는' 건강한 삶의 방식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운동화 끈을 묶을 때마다 이건 그냥 러닝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작은 생활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50일 밖에 안 된 시점이지만(나에게는 50일이나 성공한 시점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꾸준히 달린다면 언젠가 남편과 함께, 더 나아가 아이들과 함께 마라톤에 나서는 상상을 해본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많은 상상들이 현실이 되었던 것처럼, 언젠가는 이 상상도 아이들의 운동화 끈을 묶어주며 시작되는 어느 날의 현실이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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