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프롤로그

포토에세이

by 세상과 마주하기

부산, 내가 사랑한 시간들을 적으며


1972년, 부산 동구의 침례병원에서 내가 태어났을 때 처음 들은 소리는 아마도 바닷소리였을 것이다. 부산항의 기적소리, 갈매기의 울음소리, 그리고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히는 소리. 이 모든 것들이 내 생의 첫 배경음악이었지 않을까?


교사셨던 아버지의 전근을 따라 경남에 거주했던 국민학교 1학년까지를 제외하고, 내 인생의 전부를 부산에서 살아오고 있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이 도시와 함께 보내며 나는 부산의 모든 계절을 겪었다.

그러나 정작 부산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 것은 2001년, 이곳 부산에서 내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와 손을 잡고 부산을 걸으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였다. 아이의 배경이 되어준 이곳 부산이 비로소 나의 시선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나에게 부산은 너무나 익숙한 일상이었다. 매일 지나치는 거리, 늘 가던 시장, 항상 그 자리에 있던 바다. 모든 것이 당연했고, 특별할 것이 없어 보였다.


나는 부산의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툴렀다. 노출도 맞지 않았고, 구도도 엉성했다. 하지만 셔터를 누를 때마다 느끼는 그 짜릿함과 설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카메라를 들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내가 살아온 이 도시의 진짜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


2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부산은 놀라울 정도로 변했다. 허허벌판이었던 해운대 우동에는 마천루들이 숲을 이뤘고, 옛 수영비행장이었던 수영강 일대는 새로운 도심으로 탈바꿈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되면서 도시 전체가 영화의 도시로 거듭났고 거대한 컨테이너선이 드나들던 부산항은 이제 크루즈선이 드나드는 친수공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여전히 새벽마다 울려 퍼지는 부산항의 기적소리, 계절마다 바뀌는 부산 바닷가의 내음, 비가 내리면 더욱 정겨워지는 골목길의 풍경들, 겨울이 되면 소주한잔이 그리워지는 따뜻한 한 그릇의 돼지국밥. 그리고 무엇보다 변하지 않은 것은 이 도시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정 많고 의리 있는 부산 사람들의 그 따뜻한 마음 말이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카메라에 담으려 했다. 변화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사라져가는 것과 새로 생겨나는 것, 그리고 그 모든 변화의 한복판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때로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일출을 기다렸고, 때로는 늦은 밤까지 거리를 거닐며 도시의 다른 얼굴을 찾아다녔다.


수많은 사진 중에서 이 책에 실린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한 장 한 장에는 내가 부산과 함께 보낸 시간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 모든 순간들이 나에게는 하나하나가 소중한 보물이다.


오랜 기간 한 도시에서 살며 깨달은 것은, 우리가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을 가장 모르고 산다는 사실이다. 매일 지나치는 길, 늘 보는 풍경, 항상 만나는 사람들. 이 모든 것들 속에 실은 놀라운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이제 나와 함께 부산을 걸어보자. 내가 카메라 하나 손에 쥐고 걸어온 그 길을, 내가 바라본 그 풍경을, 내가 사랑해온 그 사람들을. 이 여행이 끝날 즈음, 당신도 나처럼 내가 사랑한 부산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부산, 내가 사랑한 시간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