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불꽃은
“유짱, 남자 친구 왔어!”
“네? 그럴 리가 없는데요.”
야마모토 씨가 놀람 반, 웃음 반으로 나를 찾았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뭔가 착오가 있거나, 그녀가 나를 놀리는 중이거나. 집세 내러 온 외국인이겠거니, 무심히 몸을 일으켰다. 출입구로 내디딘 발걸음이 별안간 우뚝 섰다. 키 작은 동료의 어깨너머로 낯익은 실루엣이 나타났다.
“네가 어떻게...”
커다란 캐리어 바퀴가 데굴데굴 굴렀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서는 반질반질 윤이 났다. 반갑게 손을 흔들길래 하마터면 따라 할 뻔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동료들의 수군거림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때리기 좋게 생긴 등판을 힘껏 밀고 휴게실로 들어갔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놀랐지? 너무 보고 싶어서 배 내리자마자 날아왔어. 이란에서 꼬박 2박 3일 걸리더라. 아직도 시차 적응이 안 돼.”
‘칭찬해 줘!’라는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 주 뒤에 온다던 남자 친구 대신 커다란 레트리버가 꼬리를 흔들었다. 물론 반가웠다. 반가운데... 보고 싶다고 회사를 찾아오는 발상의 근원지가 궁금했다. 더구나 여긴 외국인데.
‘대책 없는 사람일세.’
그의 낭만은 종종 현실을 몰랐다. 하지만 그 무지는 원거리 연애를 버티게 하는 힘이기도 했다. 화는 나는데 차마 화를 낼 수 없었다. 시종일관 싱글거리는 얼굴에 백기를 올렸다. 보고 싶어서 왔다는데 어쩌겠어. 그 퓨어한 사랑에 굴복하고 말았다.
잡아 준 숙소는 사무실 근처였다.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에 사색이 되어 돌려보냈다. 이날 이후, 귀국 날짜가 정해지면 의심부터 했다. 장난기 많은 연인은 종종 초등학생으로 빙의했다. 처음부터 서프라이즈 이벤트는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못을 박아둘걸. 그렇게 하지 않은 나를, 미래의 나는 원망하게 된다.
두 번째 휴가까지는 평화로웠다. 종종 싸 오는 도시락은 다정한 선물이었다. 남자 친구는 요리 솜씨가 좋았다. 커다란 그릇에 불고기와 잡채, 고소한 나물을 넉넉하게 담아왔다. 회사 근처 공원에서 먹는 점심은 따끈따끈했다. 손맛 나는 한식에 남자 친구까지. 한국으로 온 소풍처럼 마음이 포근했다.
하지만 그의 입장은 달랐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를 기다리는 시간이 무료해 보였다. 도쿄 관광은 첫 번째 휴가 때 대부분 끝이 났다. 몇 가지를 권유하다가 일본어를 무료로 가르쳐주는 모임을 찾아 소개해 줬다. 잘 다니는가 싶더니 갑자기 뜸해졌다. 왜 그러냐는 물음에 침울한 항변이 돌아왔다.
“매번 선생님이 달라지는데, 보통 나이 드신 분이야. 봉사활동으로 오시는 것 같아."
"그렇구나. 그런데 무슨 일 있었어?"
"지난번에는 어떤 할아버지가 오셨는데 한 시간 내내 자기 자랑만 하잖아. 들어주느라 힘들었어."
"아이고..."
"좋은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이젠 안 가고 싶어.”
그렇다고 어학원에 가기에는 시간도, 돈도 아깝다고 했다. 알아보니 단기로 받아주는 곳은 드물었다. 의욕을 잃은 남자 친구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누워있던 몸은 둔해 보였다. 어둠 속에서 유튜브를 보느라 눈이 충혈돼 있기도 했다.
마냥 ‘쉬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눈앞의 회사 일이 먼저였다. 쓸쓸하다고 말하는 애인의 감정을 가볍게 받아넘겼다. 눈송이처럼 커진 불만이 켜켜이 쌓였다. 억눌렀던 사교 욕구는 다음 휴가 때 폭발했다. 그 파편이 고스란히 쏟아진 최악의 동거생활은 세 번째 휴가에서 시작됐다.
문제는 내가 거처를 여성 전용에서 남녀 공용 하우스로 옮긴 데서 시작됐다. 남자 친구가 올 때마다 따로 내는 집세를 아끼고 싶어 미리 집을 옮겼다. 근처에 학교가 있어 입주민의 절반은 대학생이었다. 집 안에 퍼진 젊음의 기운이 다소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예전 방보다 넓어진 수납공간이 맘에 들었다. 건물 뒤로 흐르는 강은 근사했고, 시부야로 옮긴 사무실과도 가까웠다.
‘무리를 해서라도 다른 곳으로 옮길걸.’
그렇게 후회한 건 남자 친구가 오고 나서였다.
친화력의 달인인 그는 내가 없는 시간 동안 학생들과 어울렸다. 신이 난 나머지, 식자재를 잔뜩 사서 한식 요리사를 자처했다. 솔직히 말해 달갑지 않았다. 내 입에만 들어가던 미역국, 부대찌개, 김밥이 공용 음식으로 차려졌다. 당연한 얘기지만, 모임에는 여자 친구들도 있었다.
‘이건 뭐, 해다 바치는 수준이네.’
아래층에서 들썩이는 소음을 듣고 있으면 마음속 어딘가가 서늘하게 식었다. 굳이 저렇게 할 필요가 있나 싶어 쓴소리를 했다. 그는 속상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국에 있는 가족도 친구도 놔두고 여기 왔어. 솔직히 심심하고 외로워. 네가 내 옆에 계속 있어 주는 것도 아니잖아.”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 입장은 복잡했다. 회사에서 일하고 오면 조용한 방이 그리웠다. 셰어하우스 사람들과도 적정선을 유지하고 싶었다. 하우스 관리는 매니저의 몫이었다. 하지만 내가 사무실에서 일한다는 걸 알고 집의 불만을 털어놓는 사람이 생겼다. 원치 않는 연장근무에 파티까지. 나는 조금씩 예민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다른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게 싫어. 나하고만 있어 줘.’
입술 끝에 맴도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욕심처럼, 집착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질투로 보이는 건 그 중 최악이었다. 남자친구는 배 안에서 외로웠던 기간을, 나는 떨어져 있던 서로의 기간을 보상받고 싶어 했다. 쌓인 시간의 싸움은 팽팽했다. 우리는 별것 아닌 일에도 쉽게 토라졌다.
결국 사달이 났다. 그날은 아침부터 심하게 싸웠다. 참았던 화를 쏟아붓고 문을 쾅 닫았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따끔거렸다. 사무실에서도 집중이 되지 않아 오타의 연속이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는 심한 멀미까지 하고 말았다.
‘집에 들어가지 말까.’
발걸음이 무거웠다. 방황하는 마음과는 반대로 다리는 귀소본능을 따랐다. 유난히 조용한 대문 앞에서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문틈 사이로 계단까지 이어진 촛불길이 보였다.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주황색 불꽃이 지옥불처럼 보였다.
“프러포즈해 줘야 결혼할 거야.”
언젠가 그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원흉은 바로 나구나. 영화 데스티네이션이 떠올랐다. 눈앞에 타임머신이 있다면 주저 없이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도망칠까.’
안타깝게도, 내 마음은 사하라 사막처럼 건조했다. 감동보다는 당황이 앞섰다. 왜 하필 오늘인 건지. 심하게 싸운 일을 만회하고 싶었던 걸지도 몰랐다. 사랑이 식은 건 아니었다. 뾰족해진 감정을 마무리할 시간이 절실했다.
착잡한 표정으로 꺼진 불꽃 몇 개를 바라봤다. 상황이 어찌 됐든 나를 위해 켠 불빛이라 생각하니 돌아설 수 없었다. 애정보다는 경로에 가까웠다. 신발을 벗었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이 위를 향했다. 두 눈을 꼭 감고 마법소녀처럼 주문을 외웠다.
‘사라져라... 사라져라...’
눈앞에 웃고 있는 남자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쥐고 싶은 멱살 대신 조커처럼 웃어 보였다. 천장에 달린 풍선과 바닥에 놓인 촛불은 하트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는데 갑자기 룸메이트들이 우르르 들어와 좁은 방을 에워쌌다.
“나랑 결혼해 줄래?”
무릎을 꿇고 반지 상자를 내밀고 있는 모습에 비상탈출 버튼을 찾았다. 모두가 내 대답을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었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마음속 기도에도 답은 없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심장이 쿵, 쿵 소리를 냈다. 나는 그를 일으켜 세우며, 간신히 입을 뗐다.
“그래! 내가 데리고 살아줄게!”
지휘관의 구령처럼 강인한 음성이 정적을 깨트렸다. 어떤 로맨스도 떨림도 없었다. 모두의 박수 소리가 천둥처럼 쏟아졌다. 남자 친구의 품에 안긴 채 눈을 꼭 감았다. 이게 내 프러포즈라니. 민망함과 부끄러움이 전신을 감쌌다. 석고 인형이 된 나를 누가 망치로 내리쳐 준다면 좋겠는데.
어떻게 집을 나왔는지 모르겠다. 기념으로 근사한 저녁을 먹자며 황급히 외출했다. 그런데 남자 친구의 표정이 이상했다. 우울한 기색에 물음표가 떴다. 혹시 하기 싫었나? 그럼 하지 말지. 그런데 열린 입에서 의외의 말이 흘러나왔다.
“준비하는 거 조금만 도와달라고 했는데 아무도 안 도와주더라. 내가 뭐, 대가를 바라고 밥을 해준 건 아니지만 좀 그렇네. 그동안 한 게 뭔가 싶어.”
실망만 남은 프러포즈의 한 줄기 빛이었다.
고구마 백 개를 삼킨 식도에 사이다 한 모금이 들어왔다. 깨달음 이후, 남자 친구는 하우스 사람들과 거리를 뒀다. 어차피 귀국일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이렇게 상처투성이의 휴가는 엉성하게 막을 내렸다. 남은 건 꺼진 초의 그을음뿐이었다.
봉지에 담긴 티라이트 캔들은 속절없이 창고로 들어갔다. 결혼하면 터치식 전등을 사야지. 손을 댈 위험이 없는 플라스틱 커버가 그리웠다. 둘만의 방을 밝힌 은은한 조명을 떠올리며 속을 가다듬었다. 훗날, 신혼여행지에서 재점화한 불꽃이 그렇게 활활 타오를 줄은, 그때의 나는 정말로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