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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결말

떨어진 양말 한 짝

by 유영해

느릿한 재즈 음악이 흘렀다. 긴 머리의 댄서가 우아한 몸짓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공용 거실에 설치된 은색 봉을 잡고, 몸이며 다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화려한 레이스 사이로 다듬어진 잔근육이 도드라졌다. 조명이 켜지자, 모두가 힘을 모아 손뼉을 쳤다. 신규 하우스 오픈을 축하하는 함성이 천장까지 울렸다. 스태프로 참가한 나는 돌아다니며 입주 예정자의 인터뷰를 모았다. 후기 페이지를 만들 생각에 머리가 분주했다.

<보증금·사례금·보증인 불필요! 가구 포함, 공과금 포함, 가방 하나면 입주 가능!>


내가 다닌 부동산 회사의 캐치프레이즈다.

사장은 한국계 일본인이었다. 입사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직원들 대부분은 유학파로 외국인 응대에 능숙했다. 드라마에서 보던 딱딱한 일본 회사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개성 강한 하우스 매니저가 주가 되어 회사를 이끌었다.


“무슨 역 근처가 좋으세요? 원하시는 방 형태는요?”


나는 정보관이라 불리는 사무실에서 전화와 메일 업무를 담당했다. 의외로 입주민의 대부분은 일본인이었다. 집세를 아끼고 싶거나 외국인과 소통하고 싶은 내국인이 우리 회사를 찾았다. 일은 할수록 늘었다. 고마워하는 고객의 말에 등과 어깨가 쭉 펴졌다. 능숙하지 못한 영어 실력이 유일한 스트레스였다.


입사와 동시에 회사 소속 셰어하우스로 이사했다. 사원은 월세를 면제받아 생활 부담이 대폭 줄었다. 다만, 여성 전용이라 남자 친구가 머물 수 없었다. 그걸 고려했다면 다른 집으로 이사를 했을 텐데. 나중에야 깨닫고 아쉬워했다.

“올 때가 됐는데.”


하선 후 첫 번째 휴가는 설렘 그 자체였다. 도착 장소와 시간을 전달받고 회사에 휴가를 신청했다. 한밤중에 눈이 떠져 잠들지 못했다. 출발 두 시간 전부터 공들여 화장하고 머리를 매만졌다. 새로 산 치마에 스카프를 두르고 침대에 앉아 다리를 떨었다. 몸이 ‘펑’하고 터져버릴 것 같았다.


남자 친구는 두바이에서 한국을 거쳐 도쿄로 오는 길이었다. 니시닛포리역 대기실 기둥 뒤에 숨어 그리운 얼굴을 기다렸다. 지나간 일 년의 3분의 2가 머릿속을 스쳤다. 애타는 마음에 자꾸 입술이 말랐다. 10분 단위로 시계를 확인했다.


잠시 후, 캐리어를 끈 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각자의 시간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반가움도 잠시,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전철에서 내린 그는 눈에 띄게 말라 있었다. 낯선 공간에서 얼마나 조심하며 지냈을지. 마음이 저릿했다.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많이 힘들었지.”

“그렇지? 나 살 많이 빠졌지! 어때, 괜찮아?”

어쩐지 눈물이 쏙 들어갔다. 팔을 벌리고 으쓱이는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성공한 다이어트에 신나 보여 가슴을 쓸어내렸다. 패션 안경에 회색 스윙탑을 걸친 모습은 근사했다. 8개월을 배에 갇혀 있던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너도 나만큼 잘 보이고 싶었구나.’

생각하는 게 똑같아 입꼬리가 올라갔다. 영화 속 장면처럼 활짝 벌린 품으로 뛰어들었다. 탄탄한 가슴은 포근했다. 쌓였던 그리움이 먼지처럼 흩어졌다.

“배는 어땠어?”

“말도 마. 내 얘기 들으면 너 울걸?”


언어로 그려진 이미지는 열악했다. 40도를 웃도는 기계실과 기름투성이의 작업복, 귀를 두드리는 소음과 찰나의 휴식 시간. 고장 난 기계와 씨름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센스 좋다는 말, 많이 들었어.”


고개 숙인 얼굴에 씁쓸한 웃음이 맴돌았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앞으로 나서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막내면 막내답게 뒤에서 배우면 될 텐데. 근면 성실한 성격은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속에서 고장 난 기계 소리가 났다.


‘안 되겠네.’


나는 남자 친구에게 마음껏 기름칠을 하기로 했다. 뻑뻑한 부품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맛집을 찾았다. 회전초밥, 라면, 전골, 덮밥, 샤부샤부 등등. 마주한 젓가락에 몸도 마음도 느슨해졌다. 새로 시작하는 커플처럼 쉬는 날에는 어디든 갔다. 자판기에서 뽑은 캔 커피도 함께 마시면 두 배는 맛있었다.


단기 속성 수업처럼 계획한 일정은 패키지여행처럼 빈틈이 없었다. 부산 타워 대신 도쿄 타워를 오르고, 깡통시장 대신 아메요코쵸를 걸었다. 휴대전화 갤러리가 사진으로 빽빽했다. 함께 산 기념품이 캐리어 한쪽을 채웠다. 놀이공원의 긴 줄조차 지루하지 않았다. 서로가 옆을 지키고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했던지. 눈부신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남자 친구의 귀국일은 축지법을 써가며 우리 앞에 도착했다. 디데이까지 날짜를 지우며 준비했지만, 무참히 실패했다. 예상한 이별인데도 그랬다. 헤어짐은 늘 갑작스러웠다.


“배 잘 타고 다녀올 수 있지?”

“응. 밥 잘 챙겨 먹고 있어.”


돌아선 두 사람의 등이 애써 앞만 보며 직진했다. 텅 빈 방에 돌아와 남은 물건을 정리했다. 침대 밑에 떨어진 양말 한 짝이 눈에 띄었다. 갑자기 흘러내린 눈물을 빠르게 훔쳤다. 너는 어떤 심정으로 비행기에 앉아 있을까. 그나마 육지에 있는 나는 사정이 괜찮아 보였다. 광활한 바다는 창살 없는 감옥 같았다. 등에 메고 있던 축 처진 가방이 떠올랐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다시 서로의 삶을 시작했다. 끊어지는 통화 내용에는 지진과 선박사고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둘 다 불안정한 지면에 발을 딛고 생활했다. ‘설마’하는 마음은 ‘혹시나’가 되어 밤을 뒤척이게 했다.


그리고 3월이 왔다. 벚꽃이 피기를 기다리던 그날, 일본은 공황에 빠졌다. 미야기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지진은 사상 최대 규모였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사무실을 빠져나와 공원에 도착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모두가 휴대전화를 두드렸다. 통신망 과부하로 연락은 불가능했다.

“괜찮을 거야. 아무 일 없을 거야.”

연결이 되지 않는 전화를 붙잡고, 남자 친구는 그렇게 되뇌었다고 한다. 가까스로 닿은 연락에도 걱정은 계속됐다. 여진의 위협과 방사능 문제 때문이었다. 열도 전체가 정적에 휩싸였다. 수많은 외국인 근로자가 모국으로 돌아갔다. 인터넷으로 들여다본 일본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정보의 바다에 서서 끝없는 해일을 맞았다.


주말에 큰 지진이 일어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충동적으로 오사카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떨리는 발끝으로 바닥을 지탱하고 먼 미래를 상상했다. 아직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회사는 유학생의 귀국으로 타격이 컸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에 일 년을 더 버텼다.


돌아온 남자 친구가 태풍을 몰고 올 줄 알았더라도, 나는 그렇게 했을까.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바다 날씨를 닮았다. 멀리서 비구름이 몰려왔다. 늘어나는 백파에 수면이 흔들렸다. 올려다본 하늘은 캄캄했다. 발밑이 조용히 젖어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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