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내게 어떤 쓸모가 있을까
우울 무렵 전망대에 올라 아파트를 내려다본다
사각 케이지 속에서 각기 오롯한 불빛,
철제 닭장에 갇힌 병아리들 같다
슬픔에도 암수가 있다
내 안에서 밖으로 나간 슬픔이 암컷,
밖에서 내 안으로 들어온 슬픔이 수컷이다
암컷은 세상의 산란용이고
수컷은 내 안의 폐기용이다
보름달이 전깃불처럼 켜졌으므로
감별대에 올려진 것처럼 아뜩해졌다
슬픔은 내게 어떤 쓸모가 있을까
믹서기로 갈 듯 분쇄시켜야 할지
슬픔을 낳고 낳아 기쁨의 유통을 도와야할지
감별의 밤
바람이 머리카락 헤쳐 비비고
달빛이 정수리 돌기를 들여다본다
검은 상자 너머
부숭부숭한 노랑이
유리창마다 연약하게 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