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만 놓고 본다면 우연과 필연은 너무나 분명한 차이가 난다.
하지만 실제로 당해 보면 그들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많다.
필연이 우연을 가장하고 나타나거나, 나 스스로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 가는 수도 있다.
그럼 앞서 든 예를 가지고 이 둘 사이의 상관관계를 살펴보자.
(1) 일기예보에서 오늘 맑음이라 하여 우산 없이 그냥 외출했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옷이 흠뻑 젖어 심한 감기에 걸렸다.
(2) 교차로에서 정지신호에 걸려 정차 중인데 갑자기 뒤에서 오던 차가 들이받아 목이 삐끗하여 한 달간 병원 치료를 받았다.
(3) 길을 가다 미끄러져 머리를 다쳤다.
여기서 각각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해보면 어떻게 될까?
(1) 아무리 일기예보가 그렇다 하더라도, 변덕스런 여름 날씨를 생각해서 접이식 우산이라도 가지고 다녀야지!
(2) 신호대기 중에는 브레이크만 밟지 말고, 기어를 중립에 넣고 사이드브레이크까지 단단히 잡아당겨 놓아야지! 그렇게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다칠 이유가 없잖아!
(3) 길을 갈 땐 항상 길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잘 살피고 다녀야지!
이렇게 되면 내게 일어난 사건이 그저 재수가 없어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상당 부분 내 잘못에서 기인한 필연이 된다.
또한, 과거에서 기인한 필연을 우연으로 착각할 때도 있다.
이는 지금 내게 우연처럼 일어난 일이 실은 지난날 내가 내린 잘못된 선택의 결과 내지는 타인에게 저지른 죄악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다.
하지만 그 반대도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에 너무 연연하여 그냥 스쳐 지나가게 내버려두어야 할 사람을 내가 붙들거나 상대에게 붙들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면, 우연과 운명 사이에는 어떤 고리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