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춧대에 사마귀가 앉은 이유를

저녁노을빛에 묻는다

by 어린왕자
고춧대에 앉은 사마귀


고추를 따려고 다가서다 고춧대에 앉은 사마귀를 보고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저도 먹이를 찾느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인기척도 없이 다가가는 나를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제법 통통하고 큰 고추를 고르느라 눈알을 요리조리 굴리다 세심하게 툭 고춧대를 건드리는데 아뿔싸, 너를 건드린 건 아닌지 너무 놀랐다. 고춧대에 어떤 벌레가 있을까? 사마귀가 먹을 곤충이 있을까? 얼마 전에 메뚜기를 봤는데 그 녀석을 잡으러 왔을까?


메뚜기와는 먼 종족이라 딱히 천적도 아니라는데. 오히려 바퀴벌레과에 가깝다 하는데 그 녀석처럼 징그럽진 않다. 모양새도 예쁘고 색도 예쁘고 사람이 먼저 덤비지 않으면 해가 없으니 다행이지만 저 녀석이 앞발을 치켜들고 나를 노리는 것 같아 무섭다. 저 녀석이 어디론가 가야 내가 고추를 딸 텐데.


안 갈 거니?


사마귀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그의 길을 알 수 없다. 어쩌다 이곳에 숨어들었는지 사마귀가 되어 보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다. 무더위에 휙휙 그늘을 찾아 날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곤충을 잡아먹기 위해 분명 먼 길을 왔을 텐데 하필 내가 있는 이곳에 숨어 앉아 갈 곳을 잃어 안타깝다. 그를 보고도 손으로 내치지도 못한다. 굳이 내쫓을 이유가 없다. 인기척에 갑자기 길을 잃은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너는 어디로 갈 거니?


입추가 지나면서 바람으로 가을을 느낀다. 고춧대가 하늘거리는 건 바람이 앉았다 일어선 흔적이다. 위아래로 흔들거리며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 무진 애를 쓰고 있다. 긴 발을 다소곳이 오므리고 불청객이 떠나길 사마귀는 바란다. 사마귀는 자신 앞에 앉은 가을바람을 움켜쥐고 놓아주질 않는다. 저녁노을에 섞인 석양빛 머금은 바람일지라도 외면하지 않는다.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안다.


혹 노을빛에 물든 가을바람이 사마귀가 가야 할 길을 알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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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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