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았어. 우연이었지.
퇴직자 교육에 참석해 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선 길에서.
튤립나무의 마른 꽃,
튤립 꽃모양을 닮아 이름 붙여진 꽃,
피고 나서도 한동안 꽃을 떨구지 못하는,
마른꽃으로 높이 매달려 있는,
꽃이 진 뒤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눈길을 받지 못하는,
아니 너의 존재를 잊고야 마는,
너무 높은 곳에서 피어나 부드러운 손길 한 번 받아보지 못한, 너를.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을 배경으로 거기에 너 있었지.
나에게 보이지 않으면 세상에 없는 존재인 것처럼 여겼지.
까맣게 잊고 있었던 너를 문득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 뒤로 미안함이 뒤따라 왔어.
봄날 환하게 피었던 널 보며 함빡 웃었던 때가 있었는데 말야.
어쩌면 그렇게 매정할 수 있을까. 최소한 너의 결실정도는 확인해보았어야 하지 않을까.
궁금증이라도 있었으면 한번쯤 올려다 보았을텐데.
아니 나는 너를 미리 알아보지 못했지.
튤립나무를 말야. 꽃이 피어야만 나는 너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어.
너의 나무줄기, 잎만으로는 알아볼 수 없으니 나는 눈이 있지만 보지 못하는 거야.
오늘에서야 어쩌다 올려다본 허공에서 누렇게 마른 꽃송이를 발견했어. 그리고서야 '너'라는 걸 알았지.
처음에는 설마 네가 그 꽃송이일까 했지. 마른 잎들이거나 새들이 짓다 만 빈 둥지가 아닐까 했어.
한동안 고개를 한껏 꺽어 올려다 보았는데 마른 꽃송이, 너였지. 너는 시들지도 못하는 꽃이구나 싶었어. 땅에 떨어지기라도 했다면 아마 몇 번이라도 널 보았을거야. 그 높은 곳에 매달려 있을줄 상상이나 했겠니?
이렇게 말야, 보이지 않음으로 나에게서 사라진,
잊혀진 그래서 그리워할수도 없는,
가끔씩 꺼내어 쓰다듬어 보고 가슴 저 깊숙이에 다시 넣으며 스스로를 끌어안고 콩당콩당 뛰는 심장소리를 다독여야 하는 그런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
여름이 시작할 즈음 들려오던 검은등뻐꾸기 울음소리,
행운처럼 만나는 인디언추장새 후투티가 땅바닥을 길다린 부리로 쪼아대는 모습,
조용한 밤 서쪽 산에서 서러운 소쩍새울음,
은방울꽃의 은은한 종소리로 다가오는 향기,
초여름 너른 잔디밭에 길게 누운 석양빛을 잊지 않으려고 해.
이제 눈을 감아도 너를 느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