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이사를 온지 이틀이 지났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거창한 일을 한 셈이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35년여를 살아온 시골을 떠나 이곳 서울로 왔다. 퇴직 후 어디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까 고민이 많았다.
오랜세월을 살았지만 시골에는 연고가 없었고 굳이 그곳에 있어야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충분한 이유가 있다. 지리산이, 국립민속국악원이 있으니까.
지리산을 떠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두딸들이 살고 있는 곳, 내가 좋아하는 것(미술관이나 박물관등)들이 많은 곳으로 결정했다.
이사라는 것이 단순히 집을 옮기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내 생의 가장 빛나는 세월을 보낸, 정든 곳을 떠나는게 쉽지 않았다.
물리적 거리를 떠나 그동안 살면서 맺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정리하는 일은 내게 많은 에너지를 요구했다.
감정을 소모하는, 마음 저리는 순간들을 매번 반복해야 했다.
이사를 하고 어느 정도 짐정리가 끝났구나 싶었던 때, 긴장이 풀린 탓이었을까.
한달여를 비실비실 앓았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딱히 아픈 곳도 없으면서.
많이 힘들었다고 물기빠진 몸이 버스럭거리며 말해주었다.
마지막이라는 이름을 달고 함께 밥을 먹으며 그동안 고마웠다고, 당신이 있어 내 생의 한순간들이 반짝이며 빛났고 행복했다고 말하는 일은 몇번을 반복해도 눈시울이 붉어지며 가슴 아리는 시간들이었다.
아주 멀리 떠나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건만 조금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이별을 이야기해야 할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다. 살다보면 보고 싶다고 볼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마음에 걸리는 사람들이 없도록 시간을 내어 얼굴 보며 '안녕' 이라는 말을 전했지만 돌아보니 만나 보면 좋았을걸 하는 사람들이 남았다.
천천히 통화라도 해야지 싶은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지.
푸르른, 하늘도 산도 들판도 대기마저 파란 생기로 반짝이는 시골에서 살다 서울로 올라오며 나는 겁을 먹었다.
하늘이 파랗게 맑지 않으면 어떡하지?
밤에 별을 하나도 볼 수 없다면?
서울의 밤하늘에 달이 뜨기는 할까?
상쾌한 바람이 나뭇잎사이로 그네를 타기도 할까?
맑은 공기를 들이기 위해 창을 활짝 열어도 될까?
만약 하늘의 별도 달도 없다면, 푸른 숲을 지나온 바람이 전하는 나무의 속삭임을 듣지 못한다면 서울살이를 포기해야할까.
정말 지리산이 그리우면 내려가겠다고, 모내기를 위해 물을 받아놓은 무논에 비치는 석양이 사무치게 보고 싶어지면 다시 짐을 싸서 내려갈거라고 했다. 그렇게 말할만큼 자신없이 시작하는 서울살이다.
아직 이삿짐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중에 저녁 산책을 나섰다.
집근처를 돌아다니며 지리를 익히고 상가를 구경했다.
조용하던 시골과는 다르게 사람들과 차가 만드는 소음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
오토바이가 지나가면 시끄러움과 함께 배기가스 냄새가 나를 힘들게 한다. 숨을 쉬고 싶지 않은 공기.
정 붙이기 어려울것 같은 대도시에서 나는 외로운 점 하나였다.
나무가 있는 곳을 찾았다. 내가 두고 온 그곳의 플라타너스가 여기에도 있다.
아파트 뒤편의 자그마한 공원에는 오솔길처럼 숲그늘 짙은 산책로도 있다. 숨 쉴만한 공간을 찾았다.
살다가 숨이 차오르면 조용히 이 나무들 곁에서 숨을 고를 수 있겠다.
메타쉐콰이어 나무가 늘씬하게 줄지어선 길에서는 걸음이 느려지겠지.
조금 더 멀찍이 나가보니 시냇가 옆에 자그마한 장미정원도 가꾸어져 있다.
봄이나 가을에는 저전거길을 따라 바람처럼 쏘다녀도 되겠구나.
어쩌면 하늘의 흰구름보다 내가 더 빨리 달릴지도 모르지.
냇가 억새가 하얗게 눈부신 날을 기다려야지.
오늘은 바람이 세게 불었다. 그러면서 대기가 깨끗해졌다.
아파트 숲사이로 멀리 산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우연히 창가를 서성이다 밖을 바라보는데, 반달이 금빛으로 빛난다.
아, 서울에도 달이 뜨는구나. 가만히 살펴보니 별도 있다.
심호흡을 한다. 맑은 공기가 내 폐포 깊숙히 들어와 쪼그라진 나를 일으켜 세운다.
이런 날이 계속되면 좋으련만. 바람불어 좋은 날이다.
천천히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살만한 곳이구나, 괜히 겁먹었나 싶다. 서울도 사람사는 곳이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