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집에 돌아왔다.
나흘간의 교육을 마치고 현관에 들어서면서 책상부터 찾았다.
며칠 전에 갖고 싶었던 책상을 주문하고 떠났는데 내가 없는 사이에 배달 되었다.
안달이 나서 아이에게 조립을 부탁했다.
돌아오면 바로 책상에 앉아 보고 싶어서.
크지 않은, 혼자 글을 쓰거나 책 읽기 좋은, 책을 쌓아 놓기에는 좁아서 매일 정리해야 하는 작은 책상이다.
에전에는 내 책상이 따로 있었다.
그것도 두개나, 하나는 사무실에서 공적인 사무를 보는 책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거실에 나만 사용하는 책상이 놓여있었다.
거실의 책상은 적당한 크기의 테이블로 책을 여러권 늘어놓기도 하고,
노트와 필기구를 널어 놓아도 될만 했다.
그곳에서 노트북을 이용해 글을 쓰기도 하고 인터넷 서핑도 하고, 책도 읽고, 간식을 먹기도 하며
다양한 용도로 편하게 사용했다.
굳이 꼭 책상으로만 쓰이지 않아도 되었다.
이사를 오며 살림을 줄이면서 책상을 사용하던 테이블을 식탁으로 양보했다.
내방에 책상이, 나의 책상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몰랐다. 식탁 한켠에서 셋방살이를 하듯 노트북을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 글을 쓰기도 했지만 불편을 알아차리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몸도 마음도 정신이 없어서 나만의 공간을 탐할 느긋함이 없었으니까.
한달여가 지나니 이제 현타가 왔다.
있어야만 했다, 내 책상.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나의 정신적인 공간을 물리적으로 구현해주는 작고 네모난 그 무엇이 말이다.
좁은 집에 굳이 책상을 들여야 할까?
며칠을 망설이고 대안을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책상과 식탁은 다르다.
공존할 수 없는 공간이다.
책이 마음의 양식이라지만 밥과 책은 서로 친하지 않은 듯 했다.
더구나 아이는 깔끔하게 정돈되인 식탁을 원했다.
내 책이 놓여있으면 눈을 흘겼다.
눈치를 보다가 결국 책상을 들이기로 했다.
작은 공간에 어울리게 자그마한 크기로 골랐다.
서랍이 세개나 있는 대나무로 만든.
맨손으로 쓰다듬는 질감이 유리처럼 차갑지 않고, 돌처럼 딱딱하지 않고,
그렇다고 무르지도 않다. 적당한 탄성으로 나의 손길을 받아들인다.
부드럽게 열리는 서랍, 서랍이 있는 책상을 가져본지 오랜만이다.
아이는 서랍에 깔끔한 깔개를 깔았는데 자리를 잡느라 동을 올려놓았나보다.
서랍을 열어보니 내가 그동안 모아두었던 돌들이 그 안에서 빙긋 웃는다.
이러려고 내가 돌을 모았던걸까 싶게 돌은 알맞은 자리에 편안하게 자리잡았다.
이사를 오면서도 버리지 않고 데려온 한무더기의 아이들, 둥들둥글 묵직하면서도 부드럽다.
돌을 서랍에 넣을 생각을 하다니 아이가 예뻤다.
가방을 풀기도 전에 서둘어 책상을 이리저리 옮기며 자리를 잡고
사용하기 편하게 노트북도 올리고 몇권의 책을 두었다.
서랍의 돌옆에 연필 몇가루를 가만히 넣었다.
둘이 잘 어울리는 친구처럼 보인다.
갑자기 나는 부자가 되었고, 뿌듯하다.
대나무 책상에 돌과 나란히 연필 몇자루가 들어있는 서랍 세개 .
내일부터 편지를 써야지.
떠나오며 마음에 간직한 벗들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서랍속에서 연필을 꺼내어 '안녕'을 물어야지.
만년필에 다시 푸른 잉크를 채우고 하얀 종이 위에 두근거리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그리움을 꺼내야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행복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