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인인
*신우재 작가께서
'나무야 고맙다'
산문집을
보내 주셨다.
설렘 속에
황급히 읽었다.
고마움을
몇 줄 글로 가름한다.
■
망사표 배추
김왕식
지인은 오랜 공직 생활을 마치고 시골로 내려갔다. 그가 찾은 곳은 깊은 산골 마을, 바람이 맑고 햇살이 따사로운 그곳은 도시의 분주함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제는 책상에 앉아 정책을 고민하는 대신, 두 손으로 흙을 만지고 땀을 흘리며 하루를 보낸다. 그는 작은 텃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그에게 텃밭은 더 이상 단순한 땅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도전이었고, 자연과의 대화였다.
텃밭에 씨를 뿌리면서 그는 결심했다.
‘농약은 쓰지 않겠다. 자연 그대로 키우겠다.’
그의 결심은 유기농 농사를 짓겠다는 뜻이었다. 화학 약품 없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농작물을 키우겠다는 그의 철학은 텃밭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말했다.
"농약을 안 쓰면 벌레들이 다 먹고 남는 게 없을 텐데."
지인은 웃으며 답했다.
"자연도 먹을 몫이 있어야지."
그의 텃밭에는 배추, 고추, 상추, 그리고 토마토가 자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배추의 잎사귀는 군데군데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민달팽이와 작은 벌레들이 잎을 갉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농약을 쓴다면 이러한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농약을 쓰지 않고 자연의 법칙을 따르기로 한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배추를 보고 있던 그의 아내는 한 마디 던졌다.
"우리 집 배추는 망사표 배추네."
아내의 익살스러운 말처럼, 배추는 마치 망사처럼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다.
그는 그 모습이 좋았다.
자연스럽게 구멍이 난 배추는 어쩐지 더 생동감이 있었다. 그 구멍 하나하나에 민달팽이와 벌레들의 숨결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텃밭의 역사를 담은, 자연과의 공생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많은 것을 깨달았다. 농사를 지으면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자연은 그저 인간이 다스리고 이용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며 배워야 할 존재라는 것을. 민달팽이가 배추를 먹는 것도 자연의 순환 중 하나일 뿐이다. 자연의 질서 안에서 모든 생명은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질서에 인간이 억지로 끼어들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인간이 자연의 순리에 맞춰 살아갈 때, 진정한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그는 느꼈다.
텃밭에서 흙을 만지고, 땀을 흘리고, 새싹이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며 그는 조금씩 자연에 물들어 갔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여유로움과 평온함이 그를 감쌌다. 이 모든 과정이 바로 그가 원했던 새로운 삶이었다. 그는 작은 텃밭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지인은 이제 텃밭에서 자란 작물들을 수확할 때마다 작은 기쁨을 느낀다. 완벽하지 않은 모양의 배추, 벌레가 조금 먹은 상추도 그에게는 특별하다. 그 안에는 그의 땀과 정성, 그리고 자연과의 소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완벽한 모양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연스러운 불완전함 속에서 완벽함을 발견한다.
그는 생각한다.
'농약을 쓰지 않아서 벌레가 먹은 것들까지 포함된 이 배추는 나와 자연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텃밭에서의 시간은 그에게 삶의 새로운 가치를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바로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 그리고 작은 것에서도 감사함을 느끼는 법이다.
그의 삶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곳에는 성취감, 평화, 그리고 자연에 대한 깊은 존경이 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텃밭을 가꾸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는 노정이었다.
그 노정 속에서 그는 더 이상 도시의 번잡함을 그리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그저 오늘도 아내와 함께, 망사표 배추를 바라보며 웃음을 짓는다. 그 웃음 속에는 그가 찾은 삶의 지혜와 기쁨이 담겨 있다.
ㅡ
이처럼
그가
십수 년 간 지족知足하고 낙도樂道했던 그곳
역시
개발 앞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경운기나 다니던 집 앞 길은
흙짐 가득 실은 덤프트럭의 차지가
된 지 오래다.
야채 심고 남은 텃밭 뒤켠
나무 그늘에서 가끔 즐기던
그의 오수午睡도
이젠
트럭 소리에
녹록碌碌지 않다.
■
수필가 *신우재
1943.
서울특별시 출생
1965~1970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 석사
1961~1965
서울대학교 철학 학사
1958~1961
경복고등학교
경력사항
컨벡스코리아 상임고문
2002
경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1998.9~2001
건국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초빙교수
1997.8~1998.2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1996.7~1997.8
한국언론연구원 원장
1988~1996
대통령비서실 공보비서실 공보비서관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