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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변호사 Oct 27. 2024

노답으로 살고 노답으로 키우겠습니다

    나는 항상 정답을 찾아왔다. 시험 문제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일을 할 때에도. 학생 때는 교과서를 빠트리지 않고 암기해 오지선다형 객관식 문제에서 오답이 아닌 정답을 찾아내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가까운 관계가 아닌 이상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리액션이 무엇일지, 상대가 원하는 반응은 무엇일지 고민하며 항상 ‘맞는’ 행동과 말을 하려고 했다. 내가 분위기를 띄워야 할 때는 가볍고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주제로 말하고, 윗사람이 리드해야 할 자리에서는 입을 다물고 경청했다. 상대가 칭찬을 할 때에는 겸손한 말로 응답하고, 친근감을 높여야 할 때에는 농담을 했다. 사내변호사로서 직장에서 일을 할 때에도 일의 특성상 법적인 검토를 잘 못하게 되면 회사가 형사제재나 과태료를 부과받는 등 큰 피해가 생길 수 있으니, 항상 정답만을 말하려 노력한다. 확실하지 않은 것은 단정적인 표현으로 말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일수록, 법적으로 가능하다는 말을 할 때에도 이러이러한 것은 유의하여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 나의 표현이 너무 극단으로 가지 않도록 주의한다. 의견을 말하고 나서도 혹시 내가 한 말이 답이 아닐까 걱정하고 재차 확인하며 나의 의견을 검열한다.

    내 주변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특목고, 법대, 로스쿨을 졸업한 나는 주변에 변호사, 의사, 회계사와 같은 전문직들이 많다. 대부분 경제적으로 안정된 직장이나 직업을 갖고, 좋은 거주지에 집을 마련하거나 마련하려고 노력하고, 아이를 1~2명 키우고, 좋은 차를 산다. 회사에서 만나게 되는 나보다 10~20년 정도 더 연차가 높은 선배 변호사들도 비슷한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간 관리해온 경력으로 회사의 임원이나 파트너 변호사가 되거나 개업을 하고, 학군지에 살며 아이들 사교육비에 많은 돈을 투자한다. 세상에서 인정하는 ‘정답’에 가까운 삶의 모습이다.

    아이를 낳고 회사에 복직한 후 나의 진로에 대해 한참 방황하고 있을 때, 나보다 20년 정도 연차가 높은 선배 변호사님께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지, 어떤 목표가 있으신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대기업에서 임원을 하시고 대형 로펌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계신 분이었기 때문에 ‘성공적인’ 변호사로서의 삶을 살고 계신 분은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시는지 궁금했다. 지금 나의 번뇌와 방황을 정리할 수 있는 단서가 나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하는 일이 즐겁지는 않다는 말이었다. 다만 자신이 가장 높은 부가가치를, 수익을 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하신다는 것이었다. 자신도 자신이 뭘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때 나는 뒤통수 한 대를 세게 맞은 듯했다. 인고의 세월을 보내어 사회가 인정하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갖게 되면, 지금의 번뇌는 눈 녹듯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미 그 자리에 있는 사람도 나처럼 현재에 대한 불만족감을 가지며 자신을 잃어버린 듯한 방황을 계속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 결심했던 것 같다. 이제부터라도 세상에서 말하는 ‘정답의 삶’이 아닌 ‘내 삶’을 살자고 말이다.

    인생에 정답이 있기 위해서는 인생을 구성하는 모든 값이 움직이지 않는 절대적인 상수(常數)여야 할 것이다. 시험 문제의 정답을 변하지 않는 고정된 활자로 이루어진 교과서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다. 인생을 사는 개인들은 모두 다 다른 특성과 상황을 가지고 있고, 그 개인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시대도 계속해서 변화되어 간다. 각자 예상하지 못한 사건들로 서로 다른 경험을 하며, 고유의 경험을 하며 새로운 욕구가 생기기도 하고 원래 있었던 욕구가 없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교과서와는 다르게 인생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요소들은 변수(變數)이며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러니 인생에 정답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렇게 당연한 사실을 왜 나는 깨닫지 못했을까? 왜 어른들은 이 길이 좋고 저 길은 나쁘다고, 마치 정답이 있는 것처럼 말할까? 왜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만을 근거로, 혹은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쉽게 ‘정답’을 얘기할까?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를 목표로 공부를 시작한다고 한다.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수학이 중요하기 때문에 중학교 수학을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시작한다고 하니 조기교육이 얼마나 더 앞당겨졌는지 알 수 있다. 심지어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에 집중하기 위해 영어를 미리 끝내놓으려면(?) 영어유치원에 보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수학하기도 바쁘니 유치원생 때부터 영어라도 편하게 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아직 자신의 흥미도, 재능도, 적성도 발견을 채 하지 못한 유치원생, 초등학생 아이들에게까지 의대가 ‘정답’이라며 은근히 진로를 정해주게 된 걸까?

    40살이 가까워져서까지 인생의 방황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적어도 나는 아이에게 ‘정답’을 알려줄 지혜나 자격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앞으로 AI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지 알 수 없다. 아이가 성인이 될 15년 후를, 아니 5년 후도 나는 예견할 수 없다. 우리 아이가 외향적이고 적극적이고 활발하고 자기 주관이 확실하고 음악과 춤을 좋아한다는 사실 외에는 나는 아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아직 아이의 경험이 부족해 드러난 것이 극히 일부분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나도 모르는 어떤 경험으로 인해 내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욕망과 지향점을 가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이를 열심히 관찰하고, 아이가 흥미를 가지는 영역에 노출될 수 있도록 해주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뿐이다.

    다른 부모들이 무엇을 가르치든 상관없이, 우리 아이가 관심 있는 것을 위주로 경험하게 해줘야겠다고 다짐을 하긴 하지만, 막상 아이의 주변 친구들이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다거나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모습을 보면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아이를 너무 방치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 아이가 다른 친구들이 하는 걸 못해서 자신감을 잃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특히 요즘은 주변에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어릴 때 배우면 발음도 좋고 영어를 더 편하게 할 수 있으니 그 자체로 좋기도 하고, 영어실력을 미리 키워놓으면 초등학교 이후에 다른 과목에 집중할 수 있으니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영어유치원을 안 다니면 나중에 유명 영어학원의 레벨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영어학원을 다니는 것조차 어렵다는 말도 들려온다. 우리 아이는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것을 무척 좋아해, 상대적으로 유창한 한국어로 친구들, 선생님들과 함께 대화하고 놀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영어유치원이 아닌 일반유치원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무서운 소문(?)을 들으면 ‘나중에 아이를 고생시키는 것은 아닐지’, ‘아이가 가질 수 있는 선택지가 줄어드는 것은 아닐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든다. 특히 남편과 나 둘 다 영어 때문에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생각하다 보면, 아이에게라도 그 스트레스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영어유치원을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정답’을 알 수 없기에, 불안하지만 그래도 아이의 생긴 모습 대로 따라가는 방법밖에는 없는 듯하다. 미래를 알 수 없으니 과정이라도 즐기는 데 집중하자 다짐한다. 아이 스스로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 스스로 배우려는 의지로 원하는 바를 쟁취해가는 과정,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으로 특별해지는 과정을 그저 옆에서 응원하려고 한다. 나는 나의 아이가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를 바라는 본능적인 마음을 계속해서 덜어내려고 한다. 세상의 기준에서 ‘최고’가 되려는 ‘정답 같은 삶’보다, 자신의 서사 속에서 ‘특별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먼 미래에 우리 아이가 나의 선택에 혹은 내가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거나 원망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부모로서의 여정을 나 답게 떠나보려고 한다.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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