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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치 Mar 20. 2024

통일이 '끝없이 아득한 미로'인 까닭

남북합의는 ‘시지프스 신화’의 바위

   

분단 한국의 숙원은 평화·통일이다. 1972년 7·4 공동성명 이후 남북한은 평화·통일을 위해 6·15와 10·4, 4·27선언 등 수많은 합의를 했다. 합의가 제대로 실현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합의의 이행 단계에서 중단되는 ‘합의OK, 실천NO’ 법칙이 작동됐기 때문이다.


남과 북이 그토록 평화통일을 다짐했건만 가다 서다를 반복할 뿐 서로에게 온전히 다가서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아직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 통일은커녕 평화조차 아득한 미로인 까닭은 무엇일까? 아래와 같이 한반도의 지정학에 기인하는 3가지 역사적 배경과 국제정치 맥락 속에 답이 있지 않을까.  

        

□ 무엇보다 역사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이다.          


1945년 8·15 이후 한국의 역사를 굴절시킨 것은 일제 식민지 유산이었다. 남남·남북 간의 갈등과 분열·대립의 가장 큰 원인은 100여 년 전에 역사의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이다. 한반도 지도가 없어지고, 역사가 단절되면서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일제 식민지배 36년 동안 일본은 조선인의 신민화, 민족 개조를 통해 한민족의 혼과 정체성을 빼앗았다. 시종 분열·반목하는 한민족을 만들었다. 한국 근·현대 100년은 친일파와 1945년 이후 친일이 친미로 옷을 갈아입은 친미파가 써내린 역사다. 일제 식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분열·사대가 온존하고 있는 것이다.


1945년 일제가 항복한 이후 한반도 역사에는 사실 해방도 광복도 없었다. 나라가 분단된 적도 없었다. 임시정부를 인정받지 못한 한반도는 임자 없는 땅이었다. 대일전의 연합군인 미군과 소련군은 전리품이 된 한반도를 분할·점령해 나눠 가졌다. 미소 양국은 3년 군사통치 후 각기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위성정부를 수립했다.


이후 6·25전쟁은 소련이 중국과 미국이 한반도에서 죽도록 싸우게 기획·사주한 국제전이었다. 스탈린의 전쟁 기획에는 미국이 북한의 남침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는 것과 중국은 어떠한 경우에도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가 있었다.   

   

미국이 전쟁에 즉각 개입한 것은 한반도 공산화를 저지하고, 전쟁을 세계 패권기반 구축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중국은 유엔군이 38도선을 넘어 북진하고, 스탈린이 김일성 군대의 만주로의 망명을 지시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참전했다. 북한을 구하고 보가위국(保家爲國)하기 위함이었다.

      

6·25전쟁 후 휴전선은 남북한 휴전선이 될 수 없었다. 양 진영의 이데올로기 분단선이자 실질적으로는 북미 간의 대치선이 되었다.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한국은 당사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군사분계선(MDL) 이남 비무장지대는 미군이 유엔사의 이름으로 관할하는 땅이 되었다. 남북교류협력은 미군 허락 없이 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휴전협상 한국군 대표였던 백선엽 1군단장은 이를 모를리 없었다.


6·25전쟁 후 재분단과 냉전으로 얼룩진 남북관계는 불신·적대감이 고조되었다. 미소에 의해 분단된 한반도는 미중이 대치하는 전선이 되었다. 거의 모든 한반도 문제는 곧 미중 간의 국제문제가 되었다. 남북관계 개선이나 평화통일은 원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동안 외세가 주도한 한반도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남북한이 치유하며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일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던 것이다.


□ 구조적으로 동북아·한반도 상황을 미중관계가 규정하고 있으니...   


미중관계가 동아시아 기축으로 설정된 계기는 한국전쟁이었다. 전쟁 중 절체절명의 순간에 남북한을 구한 미중 양국은 각각 남북한과 피의 혈맹관계를 맺어 영향력을 행사한다. 각기 남북한과 맺은 동맹조약 등을 통해 한반도를 공동으로 관리해 왔다.


관리의 기본 원칙은 1972년 2월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과 합의한 ‘베이징 밀약'이다. 이 밀약은 한반도 남북한 지역에 대한 상대방의 영향력이나 이익을 상호 인정·존중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 분단상태의 변화를 추구한 적이 없다. 양국의 이익은 분단의 현상 유지다.

     

미중 양국의 대한반도 정책과 미중관계의 변화는 한반도 상황과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핵심변수가 되었다. 구조의 변화에 따라 한반도의 상황·관계가 부침을 거듭했다. 미중 간의 냉전은 곧 남북한의 냉전이었다. 미국과 중국이 화해할 때 남북관계에서도 해빙의 무드가 조성되었다.


1972년 미중 간 상해공동성명 후 7·4공동성명 채택, 1991년 소련 붕괴 후 탈냉전 분위기 속에서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2000년 미중의 호혜적 동반자관계 형성 후 6·15공동선언 채택, 2006년 미국이 중국을 이해상관자로 인정하고 북한을 인정하면서 10·4선언이 채택되었다.  


그 과정에서도 미중 간의 대치공간인 한반도 문제는 곧 미중 간의 국제문제로 비화되었다.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정치외교전을 전개했다. 1992년 한중수교와 제1차 북핵위기 이후 북핵문제, 1997년 중국의 홍콩 환수와 한국의 IMF 위기, 2010년 중국의 일본 추월과 천안함 사건, 2015년의 한중 FTA 체결과 미군의 한국내 사드배치 등이 그것이다. 

          

한반도를 관리하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은 철저하게 분할·지배하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의 안정을 곧 자국의 안전’으로 인식하는 중국에 대해 미국은 ‘한국 수호를 곧 미국 수호’로 대응해 왔다.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를 자신들을 위한 방파제나 전방초소로 인식하고 있다. 그곳에 평화가 깃들고 통일 되어 통일한국이 미중 어느 일방에 편승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2017년 한미정상회담 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왜 한국이 꼭 통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미국과 중국은 30년(1949년~1979년)의 적대관계와 40년(1979년~2018년)의 갈등·협력관계를 유지해 오다 지금은 패권전쟁(2018년~ 현재) 중이다. 진영의 논리와 신냉전의 기운이 돌고 있는 동북아는 G2인 미중관계(구조)가 동북아·한반도 정세를 규정한다는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왈츠의 ‘신현실주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전략적 경쟁관계인 미국과 중국의 정책목표는 역내에서 상대방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고 견제하는  세력균형이다. 이에 따라 양국의 대 한반도 정책은 상대방으로부터 오는 위협 여부와 그 수준이 크게 작용한다. 양국은 동북아 역학구조 속에서 상대방의 대한반도 정책과 상호관계를 고려해 남북한과의 관계를 조정해 왔다.      

그 과정에서 동북아 역내 국가 간의 작용과 반작용끌고 밀어 당기기는 아래와 같이 일정한 패턴과 운율을 반복해 왔다.    

* 출처: 필자가 왈츠의 신현실주의 이론을 기반으로 개발한 동북아 역학구조 변화 공식임.


위 그림에서 보는바, 미중관계 변화는 동북아 정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미중관계가 협력적일 때 남북관계도 협력적으로 변화했다. 남북한은 평화통일로 가는 많은 합의를 채택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개선 조짐은 한미관계를 긴장시켜 남북간의 합의가 남북관계의 의미있는 개선으로 연결된 적이 없다.  


한반도 정세의 변화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이 서로 경계하는 것은 남한과 북한이 상대방 진영으로 가 자국의 대 한반도 영향력이 상실되는 것이다. 미국은 남북중이 영자관계 개선을 통해 3각 협력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경계한다. 중국은 한미일 3각 동맹이 자국을 견제·봉쇄하는 상황을 경계한다. 미중 사이에서 남북이 서로에게 다가서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냉엄한 현실인 것이다. 원심분리기가 상시 작동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구심력이 없으면 지금과 같이 강력한 원심력이 한반도를 지배하게 된다.  

        

현재의 한반도 상황은 미중 패권전쟁으로 한반도의 구심력이 약화되고 강대국 정치에 의한 원심력이 강화돼 남북관계가 제로(無) 상태다. 구조를 이루는 미국과 중국이 전쟁하고 있으니 양국의 후견 동맹국들인 남북한의 관계가 평화로울 수 없는 것이다.   

  

□ 현실적으로도 정전·북핵·사드 체제와 평화·통일은 공존할 수 없다.  


1953년~ 정전체제와 1993년~ 북핵체제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또 다른 구조이다. 2016년~ 사드체제는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서 중국의 적극적인 협력을 가로막는 것이다. 사드체제는 남북관계를 한 발짝 더 미국의 대중국 전략의 종속변수로 전락시켰다. 이 3중의 체제 해제 없이 한반도에 평화가 올 수 없다.          

30년 해묵은 과제인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 평화체제는 정전체제를 종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종전선언은 미군이 주도하는 유엔군사령부의 해체를 의미한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유엔군사령부뿐만 아니라 연합사령부의 해체,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를 야기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그동안 한반도 안보와 남북관계를 관리해 온 권한과 역할을 잃어버리게 된다. 2018년 10월, 미국은 한국이 남북철도·도로의 개보수 연결을 위해 필요한 인원과 물자의 북한 반입을 거부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의 승인 없이 (한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우리 정부가 취한 5·24조치 해제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정전협정 규정에 따라 유엔사의 이름으로 비무장지대(DMZ)를 통하는 모든 남북교류협력을 차단할 수 있다. 미국은 유엔사의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출입·허가권을 미국 정부의 남북협력사업 견제·통제와 대북제재 이행 감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북핵문제도 미국이 한반도 상황을 관리하는데 유용한 기제의 하나이다. 북핵문제가 지금까지 해결되지 못한 이유는 북한 측에 가장 큰 잘못이 있다. 하지만 미국의 소극적인 자세에도 책임이 없지 않다.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첫 합의인 1994년의 제네바합의를 적극 이행했더라면 그때 북핵문제가 해결되었을 것으로 본다.   

        

우연이겠지만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합의들인 남북기본합의서(1992)와 6·15 공동선언(2000년)이 합의되어 실행단계에 들어설 때 북핵문제가 제기되곤 했다. 합의의 이행을 위한 후속조치들이 1~2년 동안 순조롭게 진행되던 1994년과 2002년 미국이 제기한 북핵문제로 인한 제1, 2차 북핵 위기에 따라 남북관계가 파탄을 맞았다. 5~6년 전 남북정상이 합의한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도 휴지가 되었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수많은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과 미국 국내법은 그 어떤 남북교류협력도 할 수 없게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승인이나 동의, 특별조치 없이 한국이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한국정부의 대북정책과 남북관계는 미국의 통제관리 범위를 벗어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로 달라진 작전환경을 이유로 전시작전권의 한국 환수를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연기하자고 한다. 나아가 전시작전권이 환수될 때를 대비해서 정전협정 이행 기구인 유엔군사령부의 조직을 확대해 그 역할을 강화하려고 한다. 

          

만약 북핵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어땠을까. 그동안 북핵이 해결되지 못한 이유가 있다. 북핵은 미국이 한반도를 자국의 국익에 맞게 관리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유용한 자산이다. 1석 5조, 즉 미국에게 북핵은 ①한반도 문제 개입, ②한미동맹·한미일 안보협력, ③미국산 무기수출 증대, ④대 중국 견제, ⑤정전체제·전작권·주한미군 유지의 명분과 구실을 제공하는 유용한 자산이고 자원인 것이다.

      

북한이 핵을 고도화하고 남북관계가 크게 악화된 윤석열 정부 1년만에 한국은 각종 미국산 무기 18조원어치를 구매했다. 불안정하나마 평화가 유지된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은 2조 5,000억원 정도였다. 한반도 상황을 자국의 국익이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관리하고자 하는 미국의 의지는 확고할 수밖에 없다.


북핵문제 해결에 왕도는 없다. 그동안의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들은 모두 시작과 기대와 우려, 중단 과정을 반복해 왔다. 많은 합의 중 그 어떤 것도 실질적인 이행의 단계를 넘지 못했다. 어김없이 합의는 OK, 실천은 NO라는 법칙이 적용된 것이다. 남북 간의 합의와 실천은 ‘시지프스 신화의 바위’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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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번영과 통일은 어떻게 하나?    

      

민족의 분단선이자 지역 및 세계의 분단선인 휴전선을 지우게 될 남북통일은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지각변동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통일은 미국과 중국의 이해와 도전을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는 문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와 우리부터 바로 서야 한다.


그동안 한국정부는 미국과 함께 비정상적인 한반도 문제를 북한 탓으로 돌려왔다. 일면 타당성이 없지 않다.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가난한 독재국가 북한에게 ‘개방·개혁은 물과 불의 관계'다. 북한에게 변화 개방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핵무기 고도화에 주력하며, ‘2민족 2국가론’을 공식화한 북한에 의미있는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남 탓할 일만은 아니다. 한국은 비대칭 한미동맹 관계에서 최소한의 남북관계 관리능력조차 없다. 거짓·왜곡으로 가득 찬 한국 현대사는 국민들의 무지·분열·사대를 부추기고 있다. 사실과 진실의 논리 대신 강자와 반공, 진영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거기에서 평화·통일의 싹이 틀 리가 없다.


DMZ를 사이에 두고 남북한 아닌 북미가 대치하고 있는 현실도 인정해야 한다. 한국은 영토·안보 주권, 대북정책 결정의 자율성이 제한적인 나라다. 북방의 상대인 북한·중국은 한국을 주권국가로 보지 않는다. 북한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충견·졸개 등)을 서슴지 않는다. 중국은 한국이 자주독립해 외세 개입을 차단해야 협력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돌이켜보건데, 7·4 공동성명에서부터 4·27 판문점선언까지 50년 동안의 모든 남북한 합의·이행은 ‘합의는 OK, 이행은 NO’라는 법칙이 적용되었다. 노무현 정부가 이 법칙을 거부하며 적극 추진한 개성공단 개발과 금강산 관광, 남북철도·도로 연결 사업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냉전의 얼음을 깨고 맞은 한반도 평화의 봄은 매번 신록과 수확의 계절을 맞지 못하고 곧 겨울이 되었다. 죄를 지은 시지프스의 삶에서 끝없는 바위 올리기는 삶의 과정일 수 있었다. 그러나 외세에 의해 분단된 죄 없는 한민족의 평화·번영, 통일 노력이 왜 ‘시지프스의 바위’가 되어야 하는가?   

   

한 국가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 국민들이 결정한다. 남북한 정치 수준도 마찬가지. 역사를 통해 깨어나는 국민들의 정치적 각성·의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국민들의 높은 민주시민의식은 가장 큰 희망이다. 전쟁 걱정 없이 평화롭게 잘 사는 한반도는 그 누구도 아닌 남북한 국민들이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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