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고르는 기준
우리가 살게 된 사택은 5층짜리 아파트의 1층 집이었다. 방 3개에 화장실 1개, 양쪽에 베란다가 있는 구조로 둘이 살기에 공간은 충분했다.
문제는 벽이 얇은 건지 더위와 추위, 소음에 너무 취약했다는 점이었다.
Y군은 워낙 춥기로 유명한 곳이라 겨울이 쉽지 않을 거라는 건 각오하고 있었다. 실제로 겨울에 보일러를 틀면 바닥은 따뜻해져도 벽에서 한기가 전해졌고 이는 곧 결로로 이어졌다. 열심히 페인트칠한 포인트 벽에 침대를 붙여 놓았더니 침대와 닿은 쪽에 곰팡이가 피어 락스물로 하루종일 닦아 지워내야 했다.
방 벽이 이 정도니 외부와 거의 온도가 비슷한 베란다에 있는 세탁기는 날씨가 영하로 떨어질 때마다 얼어버렸다... 처음 세탁기가 얼었을 때 검색창에 '세탁기가 얼었어요'라고 치니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였는지 여러 해결책이 나왔다. 가장 쉬워 보이는 방법인 드라이어로 녹이니 오, 의외로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두 번 해보고 나서는 세탁을 하러 나갈 때 드라이어를 아예 같이 가지고 나가서 녹이는 경지에 이르렀다. 수도관이 얼었을 때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해결했다.
길고 긴 겨울이 지나 봄이 오자 더 이상 집이 얼지 않았고, 따뜻한 햇살과 함께 지저귀는 새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지저귀던 새 두 마리가 우리 집 베란다에 들어와 있었다 (!!?) 다행히 베란다 문을 닫아 놔서 거실로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조류, 어류, 파충류를 극도로 무서워하는 나는 베란다를 날아다니는 한 쌍의 새를 보며 온갖 상상을 시작했다.
119에 신고해야 하나? 둘이 커플이라 알이라도 낳으면 어떡하지? 저 안에서 굶어 죽으면 어떡하지?
마침 카페에 출근해야 할 시간이라 도망치듯 집을 나왔고 다른 직원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대수롭지 않게 곧 나갈 거라고들 했다. 그리고 퇴근 후에 집에 들어갔더니 진짜로 두 친구는 흔적만 대여섯 개 남겨놓고 사라져 있었다!
베란다 바닥 쪽에 골프공 두 개만 한 물 빠지는 구멍이 있어 거기로 들어온 것 같았다. 아무리 새들이 알아서 왔다가 나간다고 해도 그들이 들어오는 건 나에게 영 불안한 일이라 구멍을 막아버렸고, 그 이후로 동물 친구들이 들어온 일은 없었다.
새 침입 사건 외에 또 한 번 식겁했던 일이 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서 혼자 안방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안방 붙박이장 안에서 휴대폰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2-3분 정도 끊이지 않고..! 누가 숨어있나 싶어 떨리는 마음으로 거실로 도망쳤다가 생각해 보니 현관문이나 베란다로 들어온 흔적도 없고, 한참이 지나도 인기척이 없어 안방에 돌아가 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 진동 소리는 윗집에서 울리는 소리였던 것이다.
이후에도 말소리나 발소리, 특히 휴대폰 진동 소리가 너무 가까이서 들리는 것처럼 들려서 깜짝깜짝 놀랐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내 방 정리가 집 관리의 전부였는데 독립을 하고 보니 청소도, 환기도, 적절한 온도 유지도 모두 집을 잘 관리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었다. 단순히 쾌적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집이 망가지지 않게 유지하는 것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 지 뼈저리게 느꼈다. 가장 좋은 건 처음부터 문제가 적은 집에 사는 거라는 것도.
집이라는 공간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고 나서 집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리고 이 기준은 이사를 다닐 때마다 새로운 시행착오를 겪으며 계속해서 보강되었다. 잦은 이사로 힘들긴 했지만 그 경험들이 모여 내 집 마련을 할 때 최선의 선택-서울 대단지 아파트 소형평수 분양-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살게 될 집도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상황에 맞는 방법을 찾고 또 적응해 가며 또 다른 경험치를 쌓게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