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이 없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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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번외) 우리의 집을 찾아서 2017> 참고
돌쟁이 아가를 데리고 집 보러 다니는 데 지쳐서일까, 벽지와 장판이 엉망인 사택에 살았던지라 예쁘게 세팅된 집에 반해서일까. 우리는 네 가지 선택지 중 가장 효율이 떨어지는 분당의 소형 아파트에 전세 계약을 했다. 계약까지 마치고 나니 큰 산을 넘었다는 생각과 세 달 만에 분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한없이 후련했다. (아무리 잘해주셔도 따로 살던 가족들이 다시 모여 함께 사는 건 불편한 일이다.)
남은 건 Y군의 사택에 두고 온 짐을 분당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이삿짐센터 세 곳에 전화해서 견적을 받았고 그중 가장 저렴하고 친절한 업체에서 남자 3명, 여자 1명이 오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 그런데 아침에 이삿짐을 싸러 총 네 명이 아니라 세 명이 왔길래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니 얼버무리고 넘어가려 했다. 일하느라 바쁜데 더 말하기도 부담스러워 일단 짐을 다 싸고 이삿짐 트럭이 출발한 후에 본사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전화로 상황을 얘기하니 갑자기 그쪽에서 화를 내며 짐을 그냥 버려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알고 보니 본사 번호도 일하러 왔던 사람들에게로 연결되어 있었고, 계약과 다른 사항이었든 어쨌든 딴지를 거는 것에 화가 난 것 같았다.
생각지 못한 공격에 벙쪄 있는 나에게 엄마는 우선 잘 넘어가자고 하셨다. 이미 짐은 저쪽이 가지고 있고 우리는 오늘 안에 이사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감정적으로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 황당하긴 하지만 무서운 마음이 더 커서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결국 분당 집에 도착한 이삿짐센터 팀에게 간식거리와 음료수까지 사다 주고 달래 가며 이사를 마쳤다.
이삿짐을 다 옮겨 놓고 보니 이사 온 집은 생각보다 더 비좁았다. 큰 짐이 침대와 옷장, 책상, 식탁, 냉장고, 세탁기, 아기침대뿐이었는데도 집이 꽉 차는 느낌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거실이 아예 없다는 것이었다. 좁고 긴 주방을 지나 미닫이 문으로 연결된 거실 겸 방을 안방으로 써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끼리 지낼 때는 안방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는 게 문제가 아니었지만 손님이 올 때면 식사 대접을 안방에서 하는 게 꽤나 민망했다.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남편의 첫 발령지 부장님은 집들이를 와주겠다고 거듭 말씀하셨다. 몇 번을 사양해도 계속되는 아량에 결국 어느 평일 낮, 집들이를 하게 되었다. 15평짜리 집에 성인 남자 5명에 나와 돌쟁이 아기까지 7명이 모이려니 의자가 부족해서 식사하는 동안 나와 숭이는 침대에 앉아야 했다. 제발 빨리 식사를 끝내고 나가기만을 침대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그 와중에 부장님은 남편의 사수가 써온 편지가 있다며 일어나 읽게 하셨다. 다 큰 남자 후배에게 편지지 한 장 가득 사랑을 담아 발표하는 남편의 선배를 보며 오늘 하루의 불편함쯤은 견딜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치 빠른 효녀 숭이가 이제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울음을 터뜨리자 부장님 외 4인은 집을 떠났다. 부장님은 숭이의 손에 10만 원이 든 봉투를 쥐어주고 가셨다. 그렇게 요란법석 분당 신고식이 끝났다.
이 집 구조에서 거실이 없는 것 다음으로 불편했던 점은 아기 방의 문을 열면 신발장의 센서등이 켜진다는 것이었다. 아기를 겨우 재우고 방문을 열면 센서등이 켜지고, 아기의 눈도 떠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엄마, 아빠라면 알 것이다. 이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방문을 최소한으로 열고 옆으로 살짝 나가도 보고, 아기가 깊이 잠들기를 기다렸다 나가도 보고, 불빛이 들어오지 못하게 손으로 막으며 나가도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다 발견한 방법이 바로 '링 작전'이었다. 숭이를 재우고 나올 때 센서등이 인식하지 못하게 바닥을 기어서 나오는 것! 놀러 왔던 친구가 이 모습을 보고 놀라 기절할 뻔했던 부작용은 있었지만 2년 동안 우리는 밤마다 방문을 기어 나와 육퇴를 즐겼다.
크고 작은 불편함은 있었지만 이번 집도 적응이 되고 정이 들었다. 그리고 찾아보니 장점도 꽤 많은 집이었다.
이 집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 그리고 27살 부부에게 흰머리 나기 시작한 썰은 다음 주 금요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