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머신이 만들어진 이후 커피의 맛은 원두의 차이만 있을 뿐, 천편일률로 비슷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스타벅스 커피 맛이 변함없는 이유이다. 커피 추출이 간편한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하지 않은 커피를 맛보기는 쉽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는 핸드드립 커피나 콜드브루 커피다. 나는 커피의 순한 맛을 즐긴다. 진한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는 모카포트를 이용해 커피를 마셨다. 어제 타파스 투어 하면서 아랍 거리를 지날 때, 커피 가게를 눈여겨봤다. 오늘 점심을 먹은 이후, 스타벅스를 가자는 딸의 손을 끌고, 어제 본 아랍 거리로 찾아갔다. 제발 커피 가게가 문을 열었기를 기도했다. 나의 기도가 이루어졌다. 거리와 가게 안은 문을 사이에 두고 시간 여행하듯 경이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아랍 스타일의 카페 분위기에 몸 둘 바를 몰라 문 앞에 바보처럼 서 있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우리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환한 미소로 우리에게 낮은 좌식 테이블로 안내했다. 그리고 나온 메뉴판에 우리는 적잖이 당황했다.
“아빠, 커피 종류가 너무 많아. 그리고 이분은 영어가 안돼. 나는 스페인어가 안 되고, 주문을 어떻게 해?”
“대충 주문하면 되지. Natural coffee OR Standard coffee, OK?”
아랍 의상을 멋진 웨이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영어를 너무 어렵게 하지 마.”
“아빠 영어는 영어가 아니야, 그냥 단어의 나열이잖아.”
“어쨌든 소통은 되잖아.”
“할 말이 없다.”
“아랍 커피 처음이지? 커피 공부할 때 배우기는 했는데 나도 처음이야. 어제 지나가다 보고, 내일 꼭 가야지 했어. 보통 커피 추출 방법이 커피를 볶고, 갈아서 에스프레소 머신을 쓰는 방법과 필터로 걸러서 마시는 방법으로 나눠. 그런데 아랍 커피는 커피를 주전자에 넣어서 끓여서 마시지. 집에서 나도 한번 해봤는데, 커피 맛보다 커피 가루가 씹혀서 무슨 맛인지 모르겠더라. 오늘 제대로 된 정통 아랍 커피를 맛보게 되는구나.”
“오우, 커피 배운 남자.”
“바리스타 자격증 있는 남자야.”
“우리 그럼 물담배도 하자. 텔레비전에서 보면 아랍 사람들이 빙 둘러앉아서 커피 마시고, 물담배 한 번 빨고 그러잖아.”
“쓸데없는 소리, 내가 누누이 말하지. 담배는 피우는 것보다 한번 배우면 끊기가 마약보다 더 힘들다고. 아예 처음부터 안 하는 것이 중요해. 담배 근처도 가지 마.”
카페 안을 둘러보며 십오 분쯤 담소를 나누는 중에 드디어 커피가 나왔다. 커피는 청동 주전자에 두 잔 분 정도였다. 청동 주전자의 표면온도를 보니 직접 끊인 것은 아니었다. 커피를 끓여서 옮겨 담았을 것이다. 그러니 마시면서 커피 가루 걱정은 없었다. 모카포트로 추출한 커피 맛과 비슷했다. 커피에 향신료가 가미된 듯 커피 향이 다채로웠다. 아랍 사람들은 하루에 스무 잔을 마신다는데 이런 커피를 스무 잔씩 마시면 잠은 포기해야 할 듯싶다. 한 잔은 맛을 음미하면서, 한 잔은 빠르게 마셨다.
이제 가방을 챙겨서 공항으로 이동해야 한다. 한인 민박에 맡겨놓은 짐을 찾아 공항버스를 타야 한다. 버스 정류장을 찾지 못해 버스를 놓칠 뻔했지만, 지나가는 버스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어 버스에 탔다. 버스에서 안도하는 딸의 모습을 보니 아무 생각 없이 뒤만 따라다니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복 받은 것 같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