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신의 정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합니까?”

by 윤희웅

「그가 우리 동네로 이사 왔다」는 소설집 『꽝수반점』에 수록된 단편소설이다. 실존 인물인 조두순이 안산으로 이사 온 사건을 바탕으로,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우리가 말하는 정의는 과연 같은 의미일까? 내가 말하는 정의와 당신이 말하는 정의, 윤석열이 말하는 정의와 광장에 모인 촛불 시민들이 말하는 정의는 같은 언어일까?


소설 속 주민들은 조두순이라는 인물을 마주하며, 각자의 ‘정의의 얼굴’을 드러낸다. 어떤 이는 분노하고, 어떤 이는 두려워하며, 또 어떤 이는 아이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휩싸인다. 나는 독자들에게 조용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그가 죗값을 치렀다고 해서, 우리는 정말 안심할 수 있는가?”


소설 속 주민들은 그를 감시하고, 두려워하고, 때로는 폭력적인 상상에 사로잡힌다. 누군가는 “그를 몰아내야 한다”라고 외치고, 또 다른 이는 “그의 인권도 지켜져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 대립은 단순한 이분법이 아니다. 나는 의도적으로 독자를 윤리적 회색지대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계속 물었다.

우리는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한 채, 가해자의 재사회화를 말할 수 있는가?

법적 형벌을 마친 가해자를, 사회가 영원히 추방할 수 있는가?


이 물음은 조두순 개인의 문제를 넘어, 모든 공동체가 직면한 정의의 역설을 드러냈다. 법은 형량을 통해 사건을 종결짓지만, 피해자와 공동체는 종결되지 않은 삶을 살아간다. 내가 주목한 것은 바로, 그 종결 이후 남겨진 공동체의 정서다.


이번 대통령 탄핵 사태를 보며 나는, 각자의 정의를 내세우며 갈라선 시민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여전히 끝나지 않은, 종결되지 않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두려움에 몸서리쳐진다.


타로 카드에서 11번 **정의(Justice)**는 진실, 균형, 책임, 업보, 공정성을 상징한다. 카드 속 여성은 칼과 저울을 들고 있다. 칼은 결단과 진실, 저울은 균형과 공정성을 뜻한다. 하지만 타로의 정의는 단순한 법적 심판이 아니다. 저울이 말하는 균형은, 단순한 수치상의 공평함이 아니다.


‘피해자의 고통’과 ‘가해자의 인권’을 함께 저울에 올리는 일은, 언제나 복잡하고 고통스럽다. 그래서 카드 속 그녀는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이제 당신이 재보세요. 당신이 생각하는 정의는, 어떤 무게를 가졌는지.”


타로 속 정의는 결과가 아니라, 의도를 본다.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왜 그렇게 했는가?’를 묻는다. 정의는 칼이 아니라, 당신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나는 그 거울로, 윤석열의 내면을 비춰본다. 아니, 그의 동기와 믿음을 상상해 본다. 그는 과연 국민을 마음속에 두고 있었을까? 그가 믿은 정의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타로카드 정의는 다시 조용히 속삭인다.

“당신의 정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합니까?”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9화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