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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Jun 06. 2024

우리의 상처가 자녀의 상처가
되지 않길...

도전자들 얘기 23

아침 독서 모임에서 여러 의견을 나누었다. 참여한 여러분들의 의견이 비슷하였다. 지금 한국은 세대를 너머 많은 이들이, 그리고 여러 곳에서 신음하고 있고, 인지하지 못한 채 시대적 불안에 갇혀 내상이 깊어지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내상을 입히는 주체는 분명한데 내상을 입는 객체, 다시 말해 영문모르고 수용할 수밖에 없는 피사체는 이유도 모른 채 불안 심리에 갇혀 잡아 먹히고, 종속되어 있다는 의견이다.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구조, 종속됨이 편안해진 구조에 대한 우려도 나누었다. 되새겨 볼수록 진중하게 생각해 볼 내용인 듯하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평균 100세를 넘어 사는 인류, 뇌를 제일 안 쓰는 인류, 책을 가장 적게 읽는 인류, 개인화가 편하여 혼밥이 자연스러운 인류, 그리고 서울대 유기윤교수팀에서 발표한 4계급 시대(주1)를 살아갈 수 있는 인류를 경험하거나 그 속에 포함된 인류로 살아가고 있다.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시대의 중심에 있는데 그 명암에서 깊은 내상으로 신음하고 있다.

(주관적일 수 있지만) 내상이 깊은 신음이라 생각되는 몇 가지 포인트를 공유하고자 한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세상을 연결시켜 실시간으로 소통하게 만들었다. 특히 SNS는 모든 종류의 콘텐츠를 공유하는 소통의 방식으로 연결되어 공감이 되는 내용은 순식간에 전 세계에서 세대를 초월하여, 혹은 세대 간에 퍼지고 생각과 사고의 감각, 틀을 동일시시켰다. 즉, 초연결사회가 된 것이다. 입맛이 같아지 듯 사고의 맛도 같아져서 유사 콘텐츠 수용도가 높고, 특히 같은 세대 내에서는 단단했던 국가간 문화적 이질성 마저 사라지게 만들었다. 특정 콘텐츠는 상상을 넘어서는 엄청난 파워를 창출하기도 한다. 


공유, 공감의 소통 방식으로 디지털기술, SNS는 긍정의 효과를 창출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는 부정의 효과를 만들어 세상을 혼탁하게 하거나 불안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기도 한다. 예를 들면, Z 세대가 자신들이 살아가야 지구를 지키고, 지구의 환경을 깨끗하 하자는 뜻에 같이하여 환경보호 활동 콘텐츠를 개발하고 적극 공유하여, 세상이 동참토록 만드는 효과는 긍정적인 측면이다.


그러나 새로운 단어, 카피, 영상으로 사회적 불안감을 조성하고, 마치 같이 하지 않으면 낙오자, 루저가 되어 세상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 집착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은 부정적인 측면이다. 이 과정은 사람들이 종속되게 만들고_인간의 종속화, 잡아 먹히도록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 어려서부터 말뚝에 매인 코끼리가 충분히 힘이 있어도 인간의 사육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대로 사는 경우, 칠면조가 사육사가 주는 먹이에 만족하여 잡아먹히도록 길러진다는 것을 모르는 것(주2)과 유사하다. 


우리가 만나는 디지털 기술, 디지털 세계,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뿌려지는 영상, 글, 얘기들은 충분히 좋은 내용들이 많으나 그 속에서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그 속에서 공유되는 것을 봐야 하고, 가져야 하고, 해야 하고, 만들어야 하니 너도나도 그렇게 흉내를 낸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짓누르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 불안감은 내 존재감을 잃게 하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판단조차 못하게 한다. 이런 과정으로 인해 내상을 입고 있음을 모르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내가 주입한 것이 아닌, 나도 모르게 주입한 사고들이 내 안에서 관념으로 자리잡는다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면 똑같은 행위를 하는 모습을 본다. 남녀노소 막론하고 지하철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고 그 속의 콘텐츠에 빠져든다. 인스타, 숏츠, 페북, 망가, 게임, 드라마 등 선택은 다양하지만 99.99% 사람들은 그 콘텐츠 세계에 젖어들고 그 속에서 보이는 것을 여과 없이 수용하고 주변인과 공유하고 따라 하려 노력한다. 빨리 보고, 따라 하는 것이 자랑이 되니, 성능이 좋은 휴대폰 신상, 그것도 250만원이 훌쩍 넘는 상품을 스스럼없이 구입하는 것 아닌가? 순간 즐길 수 있는 것에 빠져들어 내 의식, 사유를 키울 수 있는 노력은 스스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이렇게 의식에 내상이 깊어지고 있음을 모른 채.....   


휘발성 강한 콘텐츠에 집착하는 동안 활자가 주는 의미를 찾는 독서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한국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한국으로 복귀 전에 주재 근무했던 모스크바 혹은 유럽에서는 여전히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왜 한국 지하철에서는 책 읽는 모습을 볼 수가 없을까? 한국의 지하철에서 제공되는 무선통신 인프라를 들어내면 사람들이 책을 읽으려나? 영국이나 미국의 지하철에는 인터넷이 잘 안 터진다. 이들의 실력이 없어서 그렇게 할까? 굳이 지하철까지 인터넷 환경을 좋게 만들 필요를 못 느낀 것은 아닐까? (물론 억지 추측일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이동하는 시간에는 정서적으로 차분한 시간을 가지라는 의도적인 배려는 아닐까? 이렇게 사람들은 지적영역이 내상에 신음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요즈음 대학이 무너지고 있다고 얘기한다. 인문학 강의는 줄고, 듣고 싶은 강의는 드물다고 한다. 서울 S 대학은 90년대까지 인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수준 높은 대학의 한 축을 담당했었는데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닌 대학이 되어가고 있다. 인문학에 대한 지속적인 계승, 차별화, 투자보다 유행에 편승하여 엔지니어링에 투자를 집중하고, 내용도 학문적인 깊이보다는 스킬에 맞추니 그 결과는 당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학에 입학한 학생 스스로 퇴학을 선언하는 모습도 종종 보게 된다. K대학 자퇴를 선언한 이예슬양 사례의 주요 내용을 공유한다. 한마디로 대학에서 배울 게 없다는 것이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스펙 쌓기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다'

'큰 배움이 없는 大學없는 대학에서 우리 20대는 적자세대가 된 부모 앞에 죄송하다'


물론 일부의 얘기일 수도 있지만 생각해 볼 문제이다. 대학도 내상이 깊어지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 지경에 아직도 대학진학 학원에서는 국영수를 우선하여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왜 아직도 국영수 중심으로 입시 시험을 보는지 모르겠다.  


교수들이 강의하기 힘들다고 한다.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 대다수는 일타강사 인강을 듣고 공부하였다. 일타강사의 강의법은 사실 훌륭하다. 이러한 강의법에 익숙한 학생들이 연배가 있는 교수의 강의를 듣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학생들에 부과되는 학점은 교수의 판단이고 권한이다. 이제는 부과된 학점에 대한 논리적 배경을 일일이 설명 해야 한다. 물론 투명한 과정일 수 있으나, 신뢰에 틈이 생긴 결과일 수도 있다. 교수들의 내상도 깊어지는 대목이다. 


미국 대학 학생들은 취직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은 동일한데 왜 미국 학생들은 취직에 대한 걱정을 안 한다는 것인가? 이들의 대답은 명료하다. 만들어진 일을 제공하는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창출하는 것을 고민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일을 창출하는 것에 집중을 한다고 하니 접근부터 다른 것이다. 대학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우느냐도 중요하지만, 대학시절동안 취직시험공부까지 해야 하는 한국 대학의 현실이 대학의 내상을 깊게 만드는 듯하다.    

     

초등학생 아이는 아빠에게 질문한다. “아빠는 왜 의사를 하지 않았어요?” 이 질문의 이면에는 아빠는 왜 돈을 많이 못 버느냐는 의문을 내포하고 있다. 아이들 세계에서는 이미 계급이 정해져 있다고 하지 않는가? 어느 동네에 사는지? 그 동네에서 어떤 아파트에 사는지? 그 아파트에서 몇 평에 사는지? 그리곤 아빠가 뭘 하는지를 통해 서열, 계급이 형성된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가 재무적인 식견을 가지도록 키우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지식의 형성이 아닌 사람의 판단 기준으로 재무적 상태를 인지시키는 아이 교육은 아이의 내상을 키우는 것이 아닐까? 같은 동네에 사는 한 아이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였던 한 아빠가 들려준 얘기는 이 사회가 얼마나 깊은 내상을 입고 있는지 보여준다. “ 철수야, 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우리 아파트 앞에 있는 자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처럼 된다” ( 참고로 자이 아파트도 무척 좋은 아파트다. )




상술한 내용은 몇 가지 예이지만, 사회가 신음하고 내상이 깊어지고 있음을 얘기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보노라면 우리 사회가 답답한 상황에 빠져 있음을 확연히 느낀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사회 모습에 기여한 기성세대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이 든다. 


사회의 내상이 깊어지고 있기에 어떻게든 치료가 필요해 보인다. 사회의 내상은 사회의 힘으로 치유해야 함이 좋을 듯한데, 누가 나서서, 무엇부터 해야 할까? 우선, 우리 사회가 내상을 입고 있음을 인지하는 분들이 많아야겠다. 집에서,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대학에서, 회사에서 사회의 내상을 인지하고 치유가 필요함을 느껴야겠다. 


120세 시대를 살아가는 한 존재로서, 그리고 부모로서, 기성인으로서, 지성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느낀다. 사회의 신음소리, 그리고 깊어지는 내상을 치유함에 기여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도전자들에게 주어진 중요한 미션이기에 꼭 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우리가 겪고 있는 내상, 상처들이 우리 자녀들의 상처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

질문을 던지는 이는 많으나

답을 주는 이 없고

주장하고 비판하는 이 많으나

실천하는 이 없는 이 현실에서

나는 무엇을, 언제,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에 대해 

120세 시대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 도전자들도 스스로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주1>  9> 월간조선, 2017. 10. 24. 미래 사회 "인공지능 권력에 의해 0.003% 대 99.997% 초양극화 사회 된다"

주2> 칠면서 : 사육사의 사료와 사랑에 길들여진 칠면조가 추수감사절에 주방으로 가서 잡아먹힌다는, 현대 직장인을 비유한 사례, 니콜라스 나심탈레브, 블랙스완, 2018, 동녁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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