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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nes Feb 03. 2024

나는 매일, 전 세계 청년들의 성장 소설을 읽는다.

엄마 나는요, 한국에 꼭 가고 싶어요.
고향에서 대학교에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좋은 남자 만나고, 여기에서 결혼하고 살라고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요.
하지만 나는 엄마, 한국에 가고 싶어요. 한국어를 배우고 더 큰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요.
여기에 있으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요.
열심히 할게요. 믿어 주세요, 엄마.


에세이의 주제는 "부모님을 설득하는 글쓰기"였다. 학생의 이야기는 절절했다. 내가 엄마라면 "그래 딸아, 어쩔 수 없지, 그렇게나 가고 싶다면 훨훨 날아가려무나. 다만 난 네가 보고 싶을 거다." 그런 말을, 확 뱉어버릴 것만 같았다.


중급 한국어를 가르치는 나는, 요즘 전 세계 청년들의 마음을 읽는다. 유학 오기 전의 그들과 유학 온 지금의 그들,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미래. 청소년이 아니라 청년들의 성장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돌아보면 내가 제대로 방황했던 것은 청소년기가 아니라 청년기였고, 나 자신의 마음이 감당이 안 됐던 것도 청소년기가 아니라 청년기였다.


절절한 이메일을 쓴 학생은, 보수적인 문화권의 학생이었다. 내가 일하는 학교에는 매우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오는데, 그런 나조차 가르쳐 본 횟수가 손에 꼽는 국적이었다. 너도 나도 한국어를 배우러 달려오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아마도 부모님은 많은 고민 끝에 많은 재산을 들이고 많은 것을 포기하고 보낸 유학이었을 거다. 학생은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나마 (부모님께서는 읽지도 못할, 한국어로 된 편지를) 써 본 게 아닐까.


"언제 부모님이 보고 싶어요?"    

"돈 없을 때요."

"언제 부모님께 전화해요?"       

"안 해요. 아! 돈 없을 때요."

"부모님께 전화하면 무슨 이야기해요?"     

"돈 보내 달라고요."


키득키득. 부모님, 하면 기승전 저런 농담을 막 쏟아내는 젊은이들. 하지만 사실, 마음속에 부모에 대해 빚진 마음 한 덩이쯤 갖고 있지 않은 사람 어디 있을까. 역시, 사람 사는 것 다 똑같고, 세계는 하나인가 보다.


인생은 힘들어요.
중급 한국어를 배우는 지금도 힘들고, 더 높은 레벨이 되는 내년은 더 힘들 거고, 한국에서 대학원에 붙어도 공부는 더 힘들어질 거예요.
힘들고 힘들고 힘들어요. 인생은 힘든 일의 연속이에요.


아이고. 나는 학생을 장난스레 안아주었다. 아니라고, 고생 끝에 낙은 온다고. 언어를 배우는 것과, 그 언어로 책을 읽고 그 언어로 보고서를 쓰는 건 다른 일이다. 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오지만, 대학에 입학한 후 많은 수가 공부가 어려워 중도 포기하거나 버티더라도 고군분투한다고 했다. 아무리 1년 반이면 1급부터 6급까지, 기억 니은부터 최고급 단계까지 한국어를 마스터할 수 있다고 해도, 6급을 졸업했다고 당장에 스무 살의 한국인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그걸 아는 학생이 미리부터 겁을 먹고 걱정이 한가득인 것이다.


하지만 사실 학생은 무척 근성 있게 공부 중이다. 여러 개의 비슷한 단어를 나열하며 이 단어들이 뭐가 다르냐고 묻고, 매일 수업이 끝날 때마다 교실을 나서는 나를 붙잡고 (미안한 표정으로) 많은 것을 질문을 한다. 보기 드문 학생이다. 나는 항상 학생들에게 말한다. 질문이 있으면 카카오톡으로 물어봐도 된다고, 다만 한국어면 된다고, 즉각 대답은 할 수 없을 거라고, 선생님은 어마어마한 드라마 마니아기 때문에 특히 밤 시간대에는 카톡을 보지 못한다고, 하지만 카톡을 보는 즉시 대답해 줄 수 있고, 너무 긴 설명이 필요하다면 학교에 와서 해주면 된다고. 그렇게 많은 여지를 주어도, 진짜 카톡으로 질문하는 학생은 사실 많지 않다.

보기 드문 학구파. 열정적인 학생, 학생의 성공이 오고 있다.


학생들의 글을 읽으며, 나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마음을 읽는다. 이제 막 초급을 벗어 난 학생들은 이제 더이상 "학교에 가요" "지난 주말에 놀이공원에 다녀왔어요" 이런 글들을 쓰지 않는다. 생각해서 쓰고 글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어떤 학생들은 이렇게 깊어진 글쓰기가 매우 힘들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점점 익숙해지고 곧 진솔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나는 매일매일 학생들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한 명 한 명, 젊은이들의 인생 서사가 보인다.


아름답고, 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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