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날개였을 지도...
다음날부터 나는 출근하지 않았다. 스스로 사직했다고 믿었기 때문에 당연했다. 하지만 몸은 집에 있어도 마음은 회사에 붙잡혀 있었다. “이렇게 간단히 끝나도 되는 걸까?”
찜찜함이 떠나질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도 회사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신참 사원 하나가 사라졌다고 해서 티가 나는 조직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휴가 끝날부터 예상은 하고 있었다. 설악산 오색의 공중전화에서 본부장과 통화했을 때, 그의 목소리는 이미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대청봉에 올랐다가 오색까지 내려왔는데 서울행 버스가 끊어져서요.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첫차 타고 바로 출근해도 될까요?”
“그럴 필요 없어. 푹 쉬어.”
일주일 정도 되는 날 쯤이었을까?
총무팀 여직원이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 회사로 좀 나오셔야겠는데요."
"왜요? 사표 냈는데요..."
"그게~ 팀장님이 사표 형식이 안 맞다고 하셔서... 회사 양식에 맞게 새로 작성하셔서 제출해야 결재라인에 올라간다고..."
헛웃음이 나왔다. 사표 문안이 규격에 안 맞는 카피라고? 카피라이터 짬밥을 먹은 지 일 년 반정도. 콘셉트에 안 맞는 카피라는 이유로 수없이 퇴짜를 맞았다. 밤새워 쓴 카피가 기획서나 브리프의 규격에 맞지 않아서 반려되긴 다반사였다.
직장 이 년 차의 무모한 오기와 만용이 서려있는 찐 날것의 사직서 문안까지 불합격이라니?
규격봉투에 반듯하게 넣어 제출한 최초의 사표가 '규격 외 카피'로 판정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