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사람을 상대하는 법
방학이 되고 나는 우연히 근로에 합격하여 기차역에서 일하게 되었다.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것은 처음이라 긴장도 되었고 설레었다. 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가끔 역무원분들을 보조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차 출발 30분 전후에 승강장에서 사람들을 안내하는 일을 했다. 남는 시간에는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었다. 단순한 일이라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이렇게 돈을 벌어도 되나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학교는 역에서 많이 떨어져 있다. 나는 학교에서 자취를 하고 있어서 버스를 타고 거의 한 시간이 걸려야 역에 도착했다. 출근은 9시 퇴근은 6시. 나는 매일 7시에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씻고 준비를 해서 출근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은 사실 적응이 되니 괜찮았지만 힘들었던 것은 추위였다. 나는 더위나 추위를 잘 타지 않는데 출근길에 버스를 기다릴 때는 왠지 모르게 추웠다. 그래도 미니 손난로와 여자친구의 출근길 응원 덕분에 잘 출근할 수 있었다.
역장님이나 역무원 분들은 다들 좋으신 분이었다. 이런 분들과 일하는 거라면 공공기관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점심도 자주 사주시고 항상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다. 커피도 자주 내려주셨다. 나는 어른들은 좋아하는 편이다. 나보다 경험한 것들이 많으시기 때문에 어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다양한 것들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직원분들도 좋고 출근길도 나쁘지 않고 일도 쉬운데 무엇이 힘들었어?”
내가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나는 의외로 사람들에게 착하고 친절한 성격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 첫인상은 잘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나누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 일을 시작하려고 결심했을 때 그리고 시작했을 때도 나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백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역에서 기차를 타는 사람들은 정말 다양했다. 어린 친구들을 시작해서 나이가 정말 많으신 분들까지 살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진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원래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잘 가지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일 특성상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리 사복을 입더라도 사람들 눈에는 내가 아직 학생으로 보이나 보다. 학생이 맞지만 말이다. 그래서 기차를 기다리시는 많은 분들이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여 주셨고 나도 친절하게 안내해 드리고 짐을 옮겨드리고 도와드렸다. 하지만 학생이라서 오히려 막대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아니 조금 많았다.
내 잘못일 수도 있지만 기차가 어디서 출발해서 어디로 가는지 열심히 공부했지만 아직 30% 정도는 잘 모른다. 역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보통 나에게 질문을 하는 손님들은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기차를 타시는 손님들. 두 번째는 기차에서 내리는 손님을 기다리는 손님들. 어느 승강장으로 가야 하는지 물어보시는 손님들은 표를 확인하고 안내해 드리면 되어서 괜찮았다. 하지만 어느 역에서 출발해서 도착하는데 어느 승강장에 내리는지 물어보시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가끔 매표창구에서 문의해 달라고 답변한다.
그래서 그런지 역에서 일하면서 이런 것도 모르냐고 막말을 하시면서 화내시는 분들이 많다. 그러면 나는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다. 근로장학생이지만 그래도 역이라는 공공기관에서 일하기 때문에 다른 역무원분들에게 폐를 끼치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에 일하면 힘든 일이 바로 이것이다. 물론 다른 직업들도 비슷하겠지만 공공기관은 특히 심했다. 바로 민원이라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정당한 민원들도 가끔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손님들의 말도 안 되는 진상 민원이었다. 하지만 민원 앞에서 공무원 분들은 어쩔 수 없으셨다. 나 역시 그렇기 때문에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이런 부당한 일들에 대하여 그냥 참고 넘겼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너무 힘들었다. 손님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기 때문이다. 2 달이라는 시간 동안 일하며 그런 손님들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많았지만 여러 장점 덕분에 잘 버티고 있었는 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진짜 나쁜 손님과 마주했다. 정확한 사연은 이야기할 수 없지만 손님이 나에게 목소리를 높이시고 화를 내셔서 나도 참지 못했다.
나는 공공기관에서 사람들을 상대하며 일하시는 공무원 분들을 존경한다. 세금을 축 낸다고 편하게 일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사람을 상대한다는 일은 말도 안 되게 정신적으로 힘든 일인 것 같다. 아무리 좋은 환경 좋은 사람들과 일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힘들었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을 일했지만 나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을 상대하는 법은 너무 어렵다. 사람들에게 받는 상처는 항상 차가운 나지만 조금은 아팠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