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의 어둠
어제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이다.
출근시간이 자꾸만 늦어진다. 게을러지는 겨울. 이불속을 벗어나기 싫어하는 내 안의 조그만 고집쟁이와 사투를 벌이다 일어난다. 기지개를 펴고 아픈 어깨를 위해 팔을 크게 열 번 돌려준다. 삐그덕 거리는 소리에 웃음이 난다. 집을 나서서 밖으로 나오다가 어둠이 깃들여있는 아침을 보고 놀랐다. 마치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어둠이 어깨를 짓누른다.
이런 아침빛깔은 처음인데...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회색빛과 차가운 공기가 심상치 않다.
이슬비처럼 가는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두꺼운 구름층은 미세한 햇빛세포만 투과시켜 지상에 어둠직전의 아침을 보여 준다.
마치 전쟁빛을 닮은 오늘의 이 기분은 어디에서 온 걸까?
마치 마녀의 굴속에 들어온 것 같은 오늘의 빛은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나는 무엇에 짓눌려 있는 걸까? 나도 모르는 내 마음속 눌림이 불안을 조장한다.
예정된 화상교육을 잘 받고 있는지 회의실 문을 빼꼼 열어본다.
집중하지 못하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송과장과 눈이 마주쳤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위아래로 눈동자를 굴리며 눈으로 말한다. 장난스럽게 웃는 송과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모니터에 눈을 고정시킨다.
연구소의 문을 빼꼼 열어본다. 늘 그렇듯이 전자부호가 가득한 모니터가 보이고 그 앞에서 차를 마시며 업무를 보고 있는 연구원들이 인사를 한다. 맑은 목소리로 굿모닝을 외치며 기술팀으로 이동한다. 쾌쾌한 냄새는 오늘도 어제마냥 계속 난다. 환기로는 해결이 안 되므로 방향제를 흔들어서 향기와 냄새를 절충시킨다.
매일 지각하느라 뛰어오는 곽팀장이 숨을 헐떡인다. 분명 어제 밤늦게까지 일에 매달리다 퇴근했을 것이다. 모른 체한다. 어느새 나는 지각을 이해하게 되었다.
오늘의 어둔 빛은 밝은 빛과 다르지 않다. 늘 그렇듯 삶은 비슷하게 흘러간다. 오늘도 다른 날과 비슷한 속도와 흐름으로 굴러간다. 그 흐름에 나는 나의 흥미와 즐거움을 넣기 위해 마음을 비운다.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고 환한 웃음을 띠어 어둠을 뒤로 물러있게 한다.
“날씨 때문인가? 커피가 참 맛있어요. 향기도 좋고!”
한 직원의 긍정적인 말이 나를 깨운다.
오늘 꼭 해야 할 일과 중요한 일을 나누고 시간을 조절해 본다. 골치 아픈 일과 까다로운 일과 진행하면 별문제 없이 흘러가는 일을 구분한다. 집중력이 최고인 아침시간에 나는 까다로운 일을 먼저 선택해서 해치운다.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마무리할 때 나는 기쁨을 느낀다. 골치 아픈 일은 다방면으로 창의력을 요구한다. 상대방과의 소통이 관건이다. 거만하지 않고 비굴하지 않으면서 호감을 조장한다. 서로에게 해가 없고 득만이 있음을 은근히 내비치고 나는 언제나 당신을 도울 준비가 되어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고요와 평안이다. 그래야 상대방의 말과 숨소리에서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계획했던 대로, 매일 이루어졌던 루틴대로 하루가 흘러갔다. 아침에 느꼈던 어둠빛은 그저 자연의 한 모습이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본 네플릭스의 무자비한 영상들이 내 마음을 교란시키고 영향을 주었나 보다. 네플릭스를 멀리해야겠다.
“평화로운 하루를 평범하게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느 날의 어둠
아침이 오다 말고 멈춰 서 있다.
하늘은 손이 닿을 듯 낮고
회색어둠은 이유 없이 마음을 누른다
불안은 어둠빛을 따라 스며든다.
빗방울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떨어지고
구름은 햇빛을 아껴 쓴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어두운 아침
그 곁을 담담하게 지나면서
밝은 기운으로 상쇄시키려 환히 웃는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
익숙한 냄새와 커피 향.
지각한 숨소리들이 어제와 같다.
하루는 계획한 만큼 흘러간다.
아침에 나를 눌렀던 어둠은
자연의 일부였고
불안은 어젯밤 영화장면처럼 사라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평화롭고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며 하루를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