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관찰력에 비해 고삐에 대한 감이 그리 좋다고 말할 순 없다.
“평보로 걸을 때, 그렇게 재갈을 물리면 안 돼요. 조금 풀어주도록 하세요. 조금 더 조금 더.”
당신은 다시 뛰어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방향을 바꿀 때 더 천천히 당기세요. 당기는 쪽 말고 반대쪽이 느슨해져도 안 돼요.”
섣불리 판단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아마도 당신은 인생의 대부분을 타인과의 관계보다 자기 일만 잘하면 문제가 없다는 자세로 살아왔을지 모른다. 어쩌면 회사에서도 연인을 만날 때도 내가 이렇게나 노력하는데 왜 따라오지 못하냐고, 생각하면서도 말하지 않고 속으로 삭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물론 당신의 태도가 틀린 것은 아니다. 당신이 왜 승마를 배우려고 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어쩌면 당신이 원한 것이 지금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내 착각이었을까.
당신은 재갈에 대한 감을 다음 날까지 찾지 못했고 그래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었다. 급기야 달그림자는 당신이 등에 올라도 제자리에 서서 꼼짝하지 않았다.
‘난 네가 뭘 원하는지 알지 못하겠어.’ 그런 시위가 아니었을까.
결국 당신이 연습할 말을 달그림자에서 새벽안개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까다로운 말로 배우면 성격 좋은 말은 비교적 쉽게 탈 수 있지만, 성격 좋은 말로 먼저 배우면 까다로운 말을 만났을 때 고생한다. 하지만 지금 당신에겐 일단 쉬운 방법부터 감을 익히는 게 중요해 보였다.
말을 바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당신은 침울해 보였다. 그날은 하루 쉬었다. 자신이 거부당했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일까.
“과몰입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당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말들은 본인 소유도 아니고 연습이 끝나면 다시 볼 수 있을지조차 모를 동물이라는 것을.
새벽안개는 눈치가 빠른 녀석이었고 재갈 부조에 무딘 편이라 당신이 원하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훈련에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당신은 상반된 명령을 내렸다. 재갈을 물리고 박차를 넣거나. 왼쪽에 힘을 주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거나. 이는 당신의 성향일 수 있으나 말에는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습관이었다.
필시 당신은 애인의 손을 놓지 않으면서 오늘은 일찍 들어갈 거야, 라고 말하거나. 오늘은 집에 아무도 없어서 하루 종일 잘 거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사람과 달리 말은 그 이면의 뜻을 알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사람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