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는 풍경
김장하는 날
노오란 속살 잘 절여진 소금기 남은 배춧잎
고춧가루 생강 마늘 파 홍당무 붉은 갓.
멸치 액젓 까나리 젓갈 토하젓 새우젓 고루 섞어
붉은 양념 살살 버무린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하얀 쌀밥 크게 한술에 떠서
김치 한쪽 길게 쭉 찢어 얹는다.
쌀의 이력들이 하나 둘 내려앉는다
화포천 친환경 우렁이 농법으로 잘 자란
눈이 산 유기농 밥알들
두 눈이 반짝이고 침샘은 폭발한다.
리모컨 버튼 툭 치니 막 튀어나온 쌀밥 광고.
김치 광고 곰삭은 멸치 젓갈 군침 도는
김치 냄새가 온몸에 밴다.
이맘때면 위 지방에는 김장철에 접어든다 날씨가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서 두꺼운 옷으로도 추위가 파고든다 김장철이면 커다란 대야에 배추를 한 이틀 절이고는 잘 씻어 수돗가에 소쿠리를 놓아 물기를 잘 뺀다 갖은양념을 준비해서 고추가루에 버무리고 기본 양념을 한 다음 굴이며 명태 조기 갈치 등을 속으로 넣으려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준비하기도 한다 명태가 갈치 조기 등을 김치 속으로 넣어 한두달 지나 익으면서 속양념 맛이 생선에 배어든 그 칼칼하고 구수한 맛은 정말 먹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런데 김치 양념에 버무린 굴은 언제나 인기가 있어서 김장날 꽤 많은 양이 소진되어 버린다 너무 맛이 있으니까 조금 숨이 덜 죽은 배추를 물에 대충 헹궈 짠기를 빼고는 굴을 넣어 한입 쌈을 만들면 누구나 오며 가면서 먹다보면 양념 굴은 커다란 그릇에 한가득 담아놔도 막상 김치를 머무릴 때쯤이면 반도 남지 않았다
엄마는 그랬다
'이러나 저러나 뱃속에 들어가는 건데 맛있을 때, 먹고 싶을 때 먹는 게 낫다'
그러면서도
'굴 구경이나 하게 여기 없는 사람들 것은 챙겨놔야 한다'
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옛일이 되어 버렸다 나는 살림을 하면서 김장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바쁘게 산 덕분이기도 하고 김장철마다 엄마 시댁 언니 지인 학부형이 김장 김치를 통째로 건네주고 가는 바람에 어떤 해는 김치 냉장고가 꽉차서 둘 곳이 없을 때도 있어 다음 김장철까지 김치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던 때도 있었다
그러니까 내게는 그동안에는 김치를 담글 여유도 기회도 없었다 해 본 놈이 잘한다고 기회가 적다 보니 자연 가장 자신 없는 것도 배추김치를 담는 일이고 맛있는 승률도 가장 낮았다 그래서 배추김치는 거의 담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 들어서는 김치를 챙겨주던 사람들도 다 사라지고 대안으로 김장 김치를 사 먹게 되었다 리모컨을 들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면서 김치 광고를 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설프지만 거기서 김장하던 날의 풍경이 재현되고 있었다 자연스레 어릴 적 김장하던 날의 풍경을 떠올리게 되고 추억 속의 그 날을 기억하면서 이를 시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