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은장도가 있었다.
조선시대도 아닌데 웬 은장도? 싶지만 여하튼 중학교 때 난 은장도를 소유한 소녀였다. 민속촌에 견학 갔을 때 받은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몰랐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가 뒤늦게 이것이 여자가 자살할 때 쓰는 칼이라는 것을 알고는 큰 충격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아플까 싶어 살짝 대봤는데
손바닥에 닿은 은장도는 생각보다 따끔했다!
(지..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이렇게나 아픈데... 나 할 수 있을까?'
(아무도 수청을 들라하지 않았음)
'나... 미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미담의 주인공은 나야 나~ 나야 나~)
어디가 제일 덜 아플까 싶어 은장도를 이곳저곳에 대보았지만 안 아픈 구석은 하나도 없었다.
정작 찔러야 하는 가슴이 제일 아팠다. (통각 세포 너란 녀석!)
그렇게 '난 글러먹었어..' 하면서 포기했던 아련한 추억이 있다.
정절, 순결은 인간이 만든 관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관념을 아주 어릴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니 중학생이 은장도를 들고 저런 걱정을 하게 된다.
자기도 모르게!
물론 내가 혼전순결 지킨다고 쓰개치마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지는 않았다
나도 왕년에는 연애 할거 다 하고 나름 자유로운 청춘으로 살았다.
(호르몬의 노예라기보단 젊은이의 자연스러운 뜨거움이라 불러다오.)
헌데 문제는 은은하게 마음에 흐르는 뭔가 깨림찍함에 있었다.
이러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왠지 더러워지는 것 같은 느낌!
아무도 더럽다고 대놓고 말하지 않아도 순결, 정절은 깨끗함을 강조하기에 그 반대 쌍인 더러움의 관념이 저절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물리적으로 더러워지는 것은 씻으면 그만이지만 이렇게 추상적인 더러움은 씻을 수도 없기에 더 괴롭다. 어느 순간부터 플라토닉 한 사랑만이 고귀한 사랑같이 느껴지고 다른 것들은 오염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모두 예쁜 청춘들의 사랑인데도 말이다.
생명보다 소중한 깨끗함이란 게 어디 있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존재의 귀함이 어찌 더러워지겠는가.
나는 내 딸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빛이 더러워질 수 없듯이 너는 더러워질 수 없는 존재야"
우리 딸도 연애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도 여느 엄마들처럼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겠지.
하지만 그 이유는 내 딸이 더러워질까 봐가 아니라
그저 우리 딸이 마음에 상처를 너무 많이 입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일 것같다.
은장도는 한참 동안 우리 집 차 조수석 서랍 속에 있었다.
자살하는 용도가 아니라
비상시에 안전벨트를 자르는 용도로 말이다.
죽이는 칼이 아닌 살리는 칼이 된 셈이다.
은장도에게도 우리에게도 이게 더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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