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다윗 Feb 06. 2024

네가 집에 불을 질렀다

여섯 달 전 너와 함께 향했던 아프리카를 이젠 너를 두고 그 길을 간다.


네 언니 오빠는 각자의 골프백을 메고 아빠와 함께 아프리카로 떠났다.


사월의 아프리카는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너를 두고 온 아빠는 자나 깨나 네 생각으로 가득하다.


지난 시간 네가 힘든 가운데서도 땀 흘렸던 골프장을 네 언니 오빠와 함께 다니면서도 한 시도 너를 떨쳐 버릴 수가 없구나.

골프장의 나무들, 푸른 그린, 길게 난 페어웨이, 지저귀는 새소리조차도 너의 기억을 안고 있구나.


너는 다시 너만의 들뜬 세상으로


    간혹 엄마와의 통화가운데 너는 이제 마음이 들뜬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은 들은 후로는 아빠는 안절부절못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구나.


네가 힘들어해도 널 이곳으로 데리고 오지 못한 것이 큰 후회로 아빠를 괴롭힌다.


얼마 전 네가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엄마의 애타는 전화를 받고 아빠는 망연자실 걱정과 염려로 잠을 이룰 수가 없구나.


네가 그간 말없이 집을 나간 횟수가 여러 번이지만 그때마다 아빠의 심장은 타 들어가 재만 남은 것 같구나.


다행히 너를 찾았다는 소식에 긴 한숨을 쉬지만 이 싸움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손짓을 하는 환상에 젖게 되는구나.


약도 심리상담도 널 구원하지 못하구나


      네가 그렇게도 먹기 싫어하는 약을 억지로 먹이고 싫다는 심리상담을 주위분들의 도움으로 널 끌어다 앉히지만 도리어 널 힘들게만 하는 건 아닌지 어지럽구나.


하지만 너도 힘들지만 네 엄마는 어떠하겠으며 같이 있는 네 언니와 동생도 얼마나 절망의 골짜기를 걷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네 언니 오빠를 데리고 아프리카로 온 자식이 많은 이 아빠는 너무 큰 죄인이 되어버렸다.


네가 집에 불을 질렀다고


      차분히 전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아빠에게 마치 꿈속의 메아리 같았다.


너는 안방 침대 위에서 불장난을 했는지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엔 이미 침대는 반쯤 타고 있었고 너는 옷장에 숨어 있었다 했다.


천장의 스프링쿨러가 터져 홍수 맞은 것 같이 되어 네 오빠의 컴퓨터를 비롯해서 우리 가족의 소중한 추억이 서려있는 물건들은 모두 망가지고 말았다.


엄마의 그 전화에 아빠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네가 다치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또 얼마나 큰 감사인지.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한 아빠가 집에 들어섰을 때 넌 불에 다 타버려 침대도 없는 텅 빈 방에서 자고 있었다.


네가 자고 있어 아빠의 눈물을 보지 못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아빠는 눈물을 지도 않았다.

이전 12화 너를 두고 떠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