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ftwaffe Ground Forces Doctrine)
1930년대 후반, 독일은 더 이상 베르사유 조약의 족쇄를 견디지 않았다. 조약이 부과한 군사적 제약은 히틀러 정권 하에서 급속히 무력화되었고, 전면적인 재무장이 시작됐다. 단지 병력을 늘리는 차원을 넘어, 이는 체제를 총력전 체제로 이행시키려는 정치적 기획의 일환이었다.
군사이론가들과 참모진은 새로운 전쟁의 형식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서도 쿠르트 슈투덴트 장군은 루프트바페의 지상군 교리에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슈투덴트는 공군의 임무를 '지상전 보조'에 머무르게 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전장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려 했다. 그렇게 독일의 공수부대, 즉 강하엽병은 정예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다.
게임 속 루프트바페(독일 공군) 지상군 교리
게임 속 루프트바페 지상군 교리 지휘관의 핵심은 강하엽병(공수부대)이다. 전술을 펼칠 때 강하엽병을 활용해야 할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전장에 투입된 강하엽병은 FG42 자동소총을 사용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주요국의 제식소총은 대부분 볼트액션식 단발 소총이었다. 그러나 특수부대나 공수부대에는 기관단총이나 자동화기가 주로 지급되었으며,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게임에서도 잘 구현됐다.
엽병은 독일어 '예거(Jager)'에서 유래한 용어로, 일본식 표현이다. 우리말로는 '사냥꾼'을 의미한다. 독일은 뛰어난 수렵꾼을 모집해서 정예부대로 양성했는데, 이 정예부대는 루프트바페(독일공군)의 공수부대에 편성되기도 했다. 이들은 뛰어난 사격 능력과 생존기술을 지닌 사람들이었고, 전장에서 큰 위협이 된다. 게임 내에서도 이러한 역사적 고증이 잘 반영되어, 강하엽병을 투입하면 탁월한 성능을 발휘한다.
게임에서 강하엽병은 명령한 지점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적 부대를 순식간에 휩쓴다. 강하엽병을 엉뚱하게 사용하더라도 최소한 하나의 분대는 빠르게 처치할 수 있다. 이처럼 강력한 유닛인 강하엽병의 특성을 잘 활용하면, 적의 후방이나 취약한 거점을 교란할 수 있다. 전선후방의 교란은 유닛의 퇴각이나 전선 유지에 큰 어려움을 초래하므로 적진영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줄 수 있다. 또한, 전면전에서 강하엽병을 투입해, 적의 주의를 끌 수 있는 전략도 효과적이다.
또한, 루프트바페 지휘관은 일정량의 군수품을 사용하여 '용맹한 강습'이라는 버프스킬을 사용한다. 이 버프는 중화기 분대(대전차포 분대, 중기관총 분대, 박격포 분대)를 제외한 모든 보병에게 적용된다. '용맹한 강습'은 이미 강력한 보병 분대의 성능을 강화하기에, 고착된 전선에서 주도권을 되찾거나 강하엽병 분대를 적 후방에서 탈출시키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루프트바페지상군교리 지휘관이 지휘전차나 중전차(티거)와 같은 특수유닛을 대신하여 강하엽병분대를 투입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강하엽병과 스킬을 적재적소에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하며, 강하엽병의 성능을 과대평가하여 다수의 적이 포진한 전선에 강하엽병만 투입한다거나, 전차가 밀집된 전선에 보내는 실수를 피해야 한다.
대체로 독일진영은 유닛양성 및 생산비용이 비싸지만, 그 성능 하나만큼은 뛰어나다. 따라서 유닛을 잃었을 때의 손실이 크므로 각 유닛을 소중히 다루는 것이 손실을 최소화하고 패배를 방지하는 방법이다.
강하엽병, 군사와 정치의 관계
독일공군 내에서도 나치에 반대했던 인물이 있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은 하인리히 하르더 대령이다. 하르더는 독일 공군의 창립초창기부터 활동한 인물로, 초기에는 나치에 동조했지만, 나치 정권의 점차적인 군사적 팽창과 무분별한 전쟁선동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는 히틀러의 전략적 결정을 비판하며, 독일공군이 고수해야 할 군사적 원칙과 인도주의를 주장했다. 하르더의 반대 의견은 공군 내에서 논란을 일으켰고, 결국 그는 군 내에서 고립되거나 좌천되는 처지에 놓인다.
하르더의 전쟁반대는 나치의 군사 전략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장차 벌어질 전쟁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우려했다. 군 간성의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나치 정권은 이러한 반대의 목소리를 묵살하며, 영토확장과 전쟁을 추진한다. 하르더의 입장은 당시 군부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그의 비판적 시각은 후일 군사적 평가에 필요한 참고자료로 남았다.
대전 초기,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공군의 지상전 교리가 성공하면서 히틀러의 권위와 지도력이 강화됐다. 대중들 사이에서 나치에 대한 신뢰가 증대되는 한편, 전쟁에서의 성과는 군사적 업적에서 그치지 않고, 정치적 안정과 나치정권의 권력강화를 가져왔다.
전술의 혁신은 기술적인 발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술혁신에는 이를 대표하는 정권이나 인물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기도 한다. 나치 정권이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고, 이를통해 정치적 성과를 거두는 데 군사전술이 역할을 한 것 처럼 말이다. 전쟁위협이 고조되는 요즘, 군사와 정치의 관계를 망각한 채 힘의 논리를 배제한 평화주의나 힘에 의한 평화만이 정답으로 제시되는 요즘, 양극단의 합리적인 절충안이 절실해보인다.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2 독일서부전선사령부진영 소개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