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를 읽었는데 왜 기분이 안 좋았을까?
서기 1982년 3월 19일 (금요일) 날씨 맑음
오늘의 중요한 일 : 없음
오늘의 착한 일 : 청소
일어난 시각 : 오전 7시
오늘은 동생과 같이 책을 읽었다. 나는 백설공주를 읽었다. 내 동생은 콩쥐팥쥐를 읽었다. 참 재미있었다. 옛날옛날에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백설공주였다. 나는 그 책을 읽으니까 기분이 좀 안 좋았다. 백설공주는 마음씨가 착했다. 그래서 나는 기분이 나빴다. 그래도 나는 참고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니까 참 좋았다. 나는 책을 앞으로는 책을 더 많이 읽을 거라고 생각했다.
잠자는 시각 : 오후 9시
오늘의 반성 : 없음
내일의 할 일 : 없음
어릴 때 어머니께서는 없는 형편에도 전집으로 된 책을 사주시곤 하셨다.
그 시절 우리 집에는 세계위인전접, 한국위인전집, 백과사전, 그리고 동화책 시리즈가 있었다.
백설공주를 읽고 있던 나는 왜 기분이 안 좋았을까?
백설공주의 마음씨가 착했는데 기분이 안 좋았고, 그래서 참고 읽으니까 또 좋았단다.
여러 번 읽었는데 해석하기 힘들어서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여보, 이거 한 번 읽어봐요. 백설공주를 읽었는데 왜 기분이 안 좋다고 썼을까요?"
내 일기장을 쓱 읽어보던 남편이 하는 말이
"아, 왜 이렇게 썼는지 알겠어요."
"이걸 이해한다고요?"
나는 남편의 반응이 신기해서 눈이 동그래졌다.
"그럼요. 내 생각엔 백설공주가 태어났는데 엄마가 죽어서 기분이 안 좋았다는 것이고, 백설공주가 마음씨가 착했는데 새 여왕의 독사과에 잠들어서 기분이 안 좋았던 것이고, 그래도 참고 읽으니 좋았던 건, 마법에서 풀려나 왕자님과 행복하게 살았기 때문 아닐까요?"
"아하~!"
남편의 해석에 무릎을 탁 쳤다.
어쩜 앞뒤 문맥 다 자르고 '좋았다가 싫었다가 참고 읽으니 좋았다'의 내용을 이렇게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을까?
때론 내 마음을, 내 글을 타인이 더 잘 이해해 주고 공감해 줄 때가 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능력.
그런 신비한 능력은 타고나는 걸까?
나도 더욱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는 연습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