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그네를 고장 냈을까?
서기 1982년 3월 17일 (수요일) 날씨 비
오늘의 중요한 일 : 없음
오늘의 착한 일 : 동생
일어난 시각 : 오전 7시 10분
오늘은 동생과 같이 놀이터에 갔다.
놀이터에서 미끄럼틀과 그네를 탔고 시소도 탔다.
참 재미있었다.
나는 그네를 마구 탔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막 나를 보고 흉을 봤다.
나는 다음부터는 그네를 마구 안 타고 고장 내키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잠자는 시각 : 오후 9시 15분
오늘의 반성 : 없음
내일의 할 일 : 없음
일기를 읽다 보면 정말 내가 이때 이런 행동을 했던 게 맞나 싶을 때가 있다.
자아비판도 아닌데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나무라고 내 허점을 비판하곤 하는 내용이 적혀있곤 한다.
쓸게 없어서 창작을 한 건지 진짜 사실인지 알 수 없다.
근데 내가 정말 그네를 고장 날 정도로 막 탔을까? 상상하기 힘든 행동이다.
이 시절에는 일기를 담임이 검사를 했다.
좋든 싫든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었겠고, 칭찬받을 일과 잘못한 일들을 포장하여 글을 써서 관심을 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래야 담임의 답글이 있게 되고, 일기장을 펼쳤을 때 빨간 볼펜으로 글이 쓰여있으면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뻤기 때문에 이런 일기를 쓴 건 아닌가 하고 조심스레 미루어 짐작해 본다.
근데
날씨가 비인데
놀이터 삼종세트를 신나게 타고 놀았다는 건 뭘까?
비가 살짝 왔다가 그쳤던 거겠지?
오늘 저녁도 쌀쌀하다.
43년 전 저녁에도 쌀쌀했겠지.
1980년대 격동의 시절을 보내면서도 어린 시절엔 아무것도 몰랐다.
그때는 2025년은 우주선을 타고 날아다니는 세상이 될 것이라 상상했었다.
그러나 그 상상보다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보며
다섯 식구 옹기종기 누워 솜이불 덮으며 꿀잠을 청했을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유지되는 따뜻한 봄이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