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소리 없이 왔다.
도시 마을에 물감을 엎질러놓고
부랴부랴 떠나려는 때에
냉큼 손내밀어 가을을 잡아본다.
잡는 것은 집착인 것을
알고 행하는 이 모순.
계절이 오고 가고
나도 흐른다.
한 때 무성했던 화려한 여름에
생의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을
하나 둘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처연히 이별하는 이 가을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 가는 것일까?
너와 우리
공존의 즐거움도
이제는 놓아야 할 때
모든 것 비우고
가벼이 떨어지는 낙엽처럼
쓸쓸한 추락 뒤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그래도
이 가을 지면서
이내 다시 피어나
세한을 견디는
한낱
매운 밀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