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결혼기념일
서른세 번의 가을이 흐르고
마냥 나도 따라 흘렀네.
온종일 인쇄된 글자가
눈앞에서 모였다가 사라지고
내 마음을 훔쳐간 가을을 쫓아
산책을 나왔다.
내 옆 타인은
온전히 영원한 타인이라
노래하는 가을의 공허한 사랑.
길가 낙엽처럼 발길에 차이며
써억 쓰으쓱 사각 사각
신음하며 흐르는 삶의 여정.
하나둘 스쳐간 유리알 같은 조각들이
일어났다 사라지고 다시 일어나면
앙상한 손에 쥐어진 번뇌의 구슬 하나
파노라마처럼 지난 시간을 응축한다.
잘한 것은 무엇이며
잘못한 것은 무엇인가?
주어진 생의 무게만큼
누에실 뽑아내듯이
걸어온만큼 흘러가야 하겠지.
저산 나뭇가지에 흐르는 가을처럼
저물녘의 가을 하늘의 해처럼
가을 따라 해 따라 나도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