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인 프롬프트 앞에 선 의문

— 효율과 사유 사이의 고민

'원하신다면'


지피티의 제안은 항상 유혹적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 취향을 이해하는 듯, 더욱 유혹이 강해지죠.

하지만, 일단 멈추어 서기로 했습니다. 밤샘 대화 이후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단 멈추어 지피티의 말을 다시 적어보며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내 머리 속은 어느 정도 정리되었지만, 그만큼 지피티에서 작업이 늦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지피티를 잘 쓸 수 있을까?'


지난 번에 밤샘 작업을 하면서 결과가 제대로 안 나온 것은,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뭔가 제대로 쓰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효율을 높일까 고민했죠.

다행스럽게도 이와 관련해서 많은 내용이 있더군요.


[완벽한 프롬프트 사용법]

[효율을 높이는 프롬프트 총정리]

[프롬프트의 마법. 이렇게 하면… ]


프롬프트, 프로그램 언어처럼 정확하게 지시하면 더 잘 작동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납득이 되었습니다.

저는 게임 개발과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구조가 결과를 바꾼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답은 단순했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지시하면 충분한 것.

빈 대화창에서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 결과에 맞게 설계된 대화에서 효율적으로 지시하는 것.


저는 곧바로 프롬프트 정리에 몰입했습니다. 저 자신에게도 효율적으로 대화하는 규칙을 더했습니다.

그 결과,

빠르게, 그리고 매우 그럴듯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어?


이상했습니다.

분명 내 생각이고, 내 말처럼 보이는데, 어딘가 내 것이 아닌 느낌.

누군가에게 빌려온 책을 그대로 읽는 것 같았습니다.


문득, 시간이 부족해 책을 요약해 강의 자료를 만들었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말은 그럴 듯 하고 수업은 문제없이 진행되었지만, 나 자신도 내 말을 믿을 수 없었던 상황.


비슷한 일이 학생들에게서도 있었습니다.


게임 포트폴리오 수업에서, 저는 '완성도 높은 결과'를 위해 제가 만든 양식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결과물에 맞추어 최적화 구조, 프롬프트 같은 것이었죠.


각 항목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하며 참고하여 작성하라고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습니다.


장르나 목표와 관계없이, 대부분 같은 구조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꼭 필요한 요소가 빠져 있었고,

반대로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이런 게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

“음… 그게… 양식에는 없어서요…”


양식은 채워졌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그럴듯한 기획서가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뭔가가 부족했습니다.


내용이 다른 것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장르에는 정답이 없으니까요.

문제는, 왜 그렇게 했는지를 아무도 말하지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왜 뺐는지, 왜 넣었는지.

과정은 없고, 결과만 존재하는 포트폴리오였습니다.


그래서 양식 대신 질문으로 시작하도록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마치 제가 처음 지피티와 대화를 할 때처럼, 간단한 질문과 제안을 통해서 학생들이 스스로 찾아가게 했습니다.


시간은 더 걸렸지만,

학생들은 말했습니다.


"이걸 진작에 배우고 싶었어요."

"이제야 게임 기획을 알 것 같아요."


완벽하게 짜여진 대화, 스크립트처럼 구성된 프롬프트는 효율적입니다. 빠르게, 그럴듯한 결과를 만들어 줍니다.

하지만 그것은, 학생들이 처음 만들었던 포트폴리오와 닮아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는지도 모른 채, 정해진 방식대로 채워 넣은 결과.

누군가가 만든 ‘성공적인 양식’에 자신의 생각을 맞춘 결과.

그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다시금 하나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호빗], [반지의 제왕]으로 잘 알려진 J.R.R. 톨킨은 대학의 교수였습니다.

어느 날 시험을 채점하던 그는, 한 장의 빈 시험지를 발견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썼습니다.


"In a hole in the ground there lived a hobbit."

(땅 속에 난 구멍 속에 한 호빗이 살고 있었다.)


당시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빈 시험지가 있었기에,

하나의 문장이 탄생했고,

그로부터 하나의 세계가 탄생하여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톨킨은 그 문장 앞에서 질문을 던졌을 겁니다.

호빗이란 무엇인가. 그 굴은 어떤 곳인가.

완벽하게 짜여진 양식이 아니라, 빈 공간에서 시작된 질문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후, 저는 프롬프트를 조금씩 덜 쓰게 되었습니다.

미리 정해둔 구조보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이 필요한지를 먼저 생각하고,

그에 맞게 묻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완벽하게 짜여진 지시문이 없어도, 지금 필요한 것을 지금의 언어로 물으면 오히려 더 솔직하고 충실한 대화가 되었습니다.


답을 찾는데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었지만, 그 과정 자체에서 새로운 생각이 더욱 충실하게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나의 빠진 부분도 없이, 정해진 양식을 완벽하게 채워주는 효율적인 프롬프트를 배워야 한다.'고


그런데 정말로 그것이 챗봇을 잘 쓰는 유일한 방법일까요?



챗봇에 휘둘리는 내 마음

1. 칭찬하는 챗봇에 대한 의심 — 호기심에서 시작한 반추

2. 멈추지 않는 챗봇을 마주한 당혹 — 갈림길에서 일어나는 주저

3. 효율적인 프롬프트 앞에 선 의문 — 효율과 사유 사이의 고민

4. 챗봇을 탓하고 싶은 유혹 — 판단과 책임의 굴레에서 시작되는 결심

5. 여러 챗봇에 흔들리는 내 마음 — 도구로서의 효율이 아닌, 대화의 태도에 끌리는 마음

6. 왜 어떤 사람들은 여러 인공지능이 똑같다고 할까? — 성능이 아닌 세계관으로 나뉘는 마

7. 왜 나는 한국어로 물었는데, AI의 답은 어딘가 다를까 — 성능이 아닌 세계관으로 나뉘는 마음

8. AI는 우리말로 답하는데 왜 다른 말이 보일까? ― 남의 나라 말로 생각하는 챗봇을 마주한 불편

9. 나는 우리말로 검색하는데 왜 다른 말로 찾을까? — 어떤 창으로 세계를 보고 있는가를 마주한 당혹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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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엉성한 느낌의 지도.

하지만, 이러한 공백이 있었기에

가운데 땅이라는 놀라운 세계가 탄생한게 아닐까요? ]

( The Hobbit / J.R.R. Tolki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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