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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의자 Sep 02. 2022

#2. 아무렇지 않게 말 바꾸는 팀장이 되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겪어온 다양한 리더들의 군상을 통해 '타산지석'의 사료를 써봅니다

내가 한 말이 이해가 안 되니?


 '네, 안 되는데요' 어제저녁 한 말과 오늘 아침하고 있는 말이 다르다. 호떡 뒤집듯 말이 바뀌니 그걸 어찌 팀원들이 다 이해하겠는가. 어제 한말을 그대로 받들어 야근까지 해가며 기껏 보고서를 그려냈건만, 오늘도 팀장은 본인이 말한 것, 생각한 것과 다르다며 말을 바꾼다. 


 그 말이란 놈을 잡아다 주리를 틀고 싶을 지경이다. '저기 저 앞에 보이는 주둥이가 너의 주인이렸다? 진실을 고할 때까지 매우 쳐라!' 그의 변덕스러운 말들과 그 주인인 주둥이를 매우 쳐주는 상황을 상상하며 오늘 아침 회의도 그저 흘려듣고 있다. 그렇게 그는 오후면 바뀔 말들을 또다시 장황하게 쏟아내고 있다.




 '입으로만 일하는 팀장'의 특징은 항상 말이 바뀐다는 것이다. 상황이 변해서, 윗사람의 심경이 변해서, 본인이 한 말을 까먹어서 등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는 언제나 아무렇지 않게 말을 바꾼다. 그의 변화무쌍한 생각과 말을 끄집어 눈앞에 보이는 실체로 표현하고 있으니, 우리가 쓰는 건 글이 아니라 그림이다. 누구도 이해 못 할 추상화 같은 그림. 


 그리고 매번 그 추상화는 원작자에게 부정당하고, 그림을 그린 이들이 대신 싸잡아 비난을 받곤 한다. '내가 원한 그림은 이게 아니다.' '내 의도와는 완전 다른 결과물이다.' '그린 이들이 아직 부족한 것 같다.' 등등... 쉽게 바뀌는 말속에 책임감이 있을 리 없다. 상황마다 바뀌는 말들 속에서 좋은 것만 주워 담아 표현하지 못한 팀원들이 부족하다 생각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스스로는 속편 할지 모르겠지만.


말을 바꿀 순 있다. 하지만 그전에 선행해야 할 게 있다.     

 윗분들의 의중과 심경 변화, 불현듯 떠오른 더 좋은 아이디어 등 상황에 따라 본인이 내뱉은 말을 주워 담고 수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전에 본인이 한 말을 바꿈으로 인해 새로운 수고를 해야 할 구성원들에게 예의를 갖추는 게 우선이다.   


 본인이 한 말을 스스로 부정하며 그 결과를 팀원 탓으로 돌리는 건 예의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예의가 없는 리더들이 생각보다 많다. '더 좋은 것들이 떠올라서 일부 수정해야겠다', '상황이 바뀌어서 다시 검토해봐야겠다' 등 상황과 맥락을 이야기하는 게 먼저다. 그러고 나서 바뀐 생각을 이야기해야 구성원도 '납득'이 가능하다. 그저 '나는 이렇게 말 한적 없는데?', '내 말은 이런 뜻이 아닌데?'라는 식으로 말만 바꾸고 순간을 면피하는 건, 팀원들에게 부정적인 팀 경험치로 누적될 뿐이다.


 말이 바뀌면 그로 인해 새로운 수고를 해야 할 팀원에게 사과를 먼저 하자. 그리고 왜 말이, 생각이 바뀌게 됐는지 맥락을 설명해주자. 나의 의식의 흐름이 호떡 뒤집듯 뒤집히는 그런 모양새라면 그런 모양새에 대해서라도 사과하고 납득을 시켜줘야 한다. 그저 그때의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말만 바꾸지 말자. 말만 바꾸기에 앞서 바뀌어질 글로 팀원들과 이야기해보자. 




시간이 흘러, '진화형 인간의 장황한 말'을 기록할
강력한 도구를 발견했다.


 '네이버 클로바 노트' 최종 진화형 인간인 우리 팀장에게 대응할 강력한 AI기반 대화 녹음 및 텍스트 변환 도구다. 우리는 부푼 기대를 안고 회의시간마다 쏟아지는 그의 장황한 말들,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그의 의식의 흐름들을 빠짐없이 녹음했다. 그리고 이를 보고서에 쓰기 위해 텍스트로 변환했다. 


 네이버의 강력한 AI는 그 장황했던 대화들을 음절 하나 빼먹지 않고 대부분 텍스트로 변환해 냈다. 하지만, 결과물을 본 우리는 더 큰 어려움에 봉착했다. 음성으로 들어도 이해가 안 됐던 말들이 글로 옮겨지니 도통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안 됐다. 앞 뒤 말도 다르고, 맥락도 왔다 갔다 하고, 심지어 팀장 본인 스스로 제일 싫어한다는 비문 투성이었다. 팀원끼리 돌아가며 AI의 회의록을 회람한 끝에 슬픈 결론을 냈다. '아직 AI는 진화한 우리 팀장의 주둥이를 감당하지 못한다. 좀 더 업그레이드될 때까진 그냥 뺄 거 빼고 우리가 쓰자.'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적당히 뺄 거 빼가며 열심히 그 말들을 받아 쓰고 있다.       



이미지 출처:Photo by krakenimage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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