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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의자 Sep 05. 2022

#3. 내가 해야할 일을 시키는 팀장이 되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겪어온 다양한 리더들의 군상을 통해 '타산지석'의 사료를 써봅니다

이번 보고 아이디어 생각 좀 해봐, 나도 생각해볼게


 오늘 아침 팀 미팅에서도 언제나 팀장은 말 끝에 "나도 생각해볼게"라는 표현을 덧붙인다. 팀장의 "나도 생각해볼게"라는 표현은 "도"라는 단어에 방점이 찍힌다. 문맥상 보고 아이디어에 대해 같이 생각해보겠지만, 경우에 따라 생각 못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둔 말이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같이 아이디어를 생각해 온 적이 없다. 언제나 '같이 해보자', '생각해 보겠다'는 표현은 그저 팀원을 시키는 말에 따라붙는 미사여구 일 뿐이다. 

 

 그래서 이제 팀원들은 기대는커녕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그가 '생각해볼게'라는 건 그냥 '팀원들이 생각해서 아이디어 가져와봐'라는 표현과 동일어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오늘도 팀장으로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직무유기'하고 있다.

  



 첫 아이디어 회의시간, 그는 언제나 리뷰어 모드이다. 같이 생각해온 아이디어를 논의하는 자리지만, 팀장은 본인 아이디어는 1도 없이 팀원들이 가져온 아이디어들에 대해 '입만 대며' 리뷰하기 바쁘다. "이런 점은 좀 아니지 않니?", "이건 저번에 했던 거 같은데?" 등등 온갖 이유를 들어 부정적인 리뷰를 한바탕 쏟아낸 뒤에야 팀 미팅은 끝이 난다. 그래서 결론은 뭐냐고? 


다음 미팅 때까지 각자 아이디어 디벨롭해오자.
오늘 리뷰한 거 반영해서.


 그렇게 그는 오늘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어 놓고, 반찬이 별로라는 둥 반찬 투정만 하다 사라진다. 진짜 이런 식이면 밥상 한번 뒤집어엎고 싶지만, 오늘도 참는 게 미덕인 월급쟁이 모드로 꾸역꾸역 참아가며 리뷰한 사항들을 수정해간다. 


 그가 시키는 게 본인이 생각해야 할 아이디어뿐이면 차라리 낫다. 팀장은 본인이 해야 할 온갖 잡무들도 여러 이유를 들어 손하나 까닥 안 하고 팀원들을 시킨다. 프린트 좀 해와라, 점심 먹으러 갈 때 내 것도 좀 사다 줘라, 하다 못해 본인이 가져온 문서들 스테이플러 찍는 것조차 팀원들을 시킨다. 그저 자리에 앉아 메일이나, 카톡, 메신저를 통해 모든 걸 원격으로 팀원에게 시키는 것에 통달한 그다.


 요새는 그 단계가 심해져서 본인이 써야 할 중요한 메일들도 팀원들에게 대필을 시키는 수준에 이르렀다. "안녕하세요, 000 팀장입니다. 지난번 회의 때 요청드린 ~~~~ " 팀원들이 메일 본문 내용을 써서 필요한 자료까지 유첨 하여 팀장에게 메일로 송부하면, 그는 그걸 약간 수정하여 그대로 포워딩하는 수준이다. 그가 팀원들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기가 찰 노릇이다.  


팀원들은 당신의 수하가 아니다.

 업무 분장에 따라 팀원들이 해야 할 일과 팀장이 해야 할 일을 구분하자. 팀장이 해야 할 일을 직무유기하지 말자. 내가 하면 귀찮을 일들을 팀원에게 시키지 말자. 그들은 더 바쁘고 더 귀찮다. 누군가를 그저 시키기에 앞서 내가 먼저 하자. 시키는 게 팀장의 역할이라는 구시대적 사고에서 탈피하자. 리더는 팀 내 코치 역할이지, 군주가 아니다. 




 아침부터 "프린트 해와라", "회의실 좀 더 큰 곳으로 잡아라" 등 원격 조종에 여념 없던 그가 부리나케 뛰어간다. 아마 십중팔구 위에 상무가 그에게 무언가를 시키려나 보다. 이렇게 내리사랑이 시전 되는 곳이라니, 나 여기서 괜찮으려나? 일단 우리한테 시킨 거 아니니 모르는 척 넘어가야겠다. 또다시 아이디어 회의하자고 부르기 전에.  




이미지 출처:Photo by Sebastian Herrman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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