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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해서 그래/ 사랑해서 그래

"세상에서 제일 작은 방공호"

by 이다연



10년 전, 내 인생에 고독한 존재가 하나 들어왔다.

이름은 아라. 세 번이나 파양을 거쳐, 마침내…

아니, 솔직히 말하면 어쩌다 보니 내 품에 안기게 된 강아지였다. (그렇다. 인생의 중요한 사건들은 대체로 이렇게 계획에 없을 때 온다.)


아라는 사랑받지 못한 아이가 아니었다.
첫 번째 집에서는 귀여움과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어미 개가 이유 모를 거부감을 보이며 젖을 물리지 않았다. 작은 몸은 하루하루 야위었고, 결국 다른 집으로 옮겨졌다.


두 번째 집은 개를 사랑하는 마음이 넘쳤다.
너무 넘쳐서 이미 7마리가 살고 있었다.
작고 약한 아라는 무리에서 밀려났고, 몇 번의 공격 끝에 더는 함께 지낼 수 없었다.


세 번째 집은 노부부였다.
마치 손주처럼 품어주던 그분들은, 미국 사는 딸이 아이를 낳자 바로 불려 갔다.
결국 아라는 또 떠나야 했다.

그렇게 각 집에서 열흘 남짓만 머물던 아라는, 보호소 직전에 내 손에 들어왔다.


처음 만난 아라는 작은 몸을 바짝 웅크리고, 커다란 눈만 굴렸다. 손을 내밀면 도망가고, 이름을 불러도 모른 척했다.

그 눈동자는 이미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나는 또 버려질 거야."


원래는 친한 동생이 데려간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 집에는 이미 개가 여러 마리 있었고, 결정적으로 어머니가 반대했다.

평소엔 개를 끔찍이 아끼던 분이었는데, 어느 날 용하다는 점집에서

“올해 살아있는 짐승이 집에 들어오면 산 사람이 송장이 된다.”는 말을 듣고는 단칼에 거절하신 거다. (솔직히 그 말, 사람보다 개를 더 무섭게 만들었다.)


그렇게 동생은 발을 뺐고, 나는 원치 않던 ‘동거’를 시작하게 됐다.
짐승 알레르기가 있었고, 한 깔끔 떠는 데 선수였던 나로선 전혀 계획에 없던 일.


점심시간에 아라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이걸 어쩌지?’라는 생각뿐이었다.

동물 이동 케이스, 사료, 기저귀, 그리고 아라와 나를 ‘적당히 분리’시켜줄 온갖 용품을 한가득 샀다.
그날부터, 우리 둘의 묘한 동거가 시작됐다.


첫날밤, 우리는 서로를 경계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라를 침대 위에 올렸지만, 아라는 슬그머니 내려가 침대 밑으로 숨었다.
그 작은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덜덜 떨고 있었다.
안아주고 싶었지만, 괜히 더 겁을 줄까 봐 참았다.

그렇게 한 달.


아라는 여전히 일정 거리를 두었고, 나는 그 거리를 줄이는 법을 연구했다.

어느 날은 발치에서, 또 어느 날은 침대 모서리에서, 그리고 한참 뒤에는… 내 발밑까지 다가왔다. (참고로, 강아지 발 냄새가 구수하다는 건 이때 알았다.ㅋ)


그동안 내 생활은 엉망이 됐다.
잠은 더 얕아지고, 털 알레르기와 냄새에 시달렸다.
아라를 위해 집안을 고치고, 일정도 조정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불편 속에서 ‘같이 산다는 책임’이 무엇인지 배우고 있었다.

불편했지만, 묘하게 그 불편이 나를 더 사람답게 만들고 있었다.


결국 동물병원이라는 곳에도 처음 가봤다.
아라의 눈물 자국을 지우고 싶었고, 시기별 접종도 알게 됐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아이, 새로 시작하게 해 주자고.

아라라는 이름은 슬픈 기억이 많았다.
그래서 비슷하지만 다른 이름—아름으로 불렀다. 이제는 ‘아름다운’ 쪽으로만 기억하자고.


그 후로 생활은 조금씩 변했다.

털 날림을 줄이려고 공기청정기를 들였고, 배변 습관을 가르쳤다.

목욕은 물놀이처럼 시작하니 거부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영역에 천천히 발을 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몸살이 났다.
몸은 솜방망이, 눈꺼풀은 돌덩이.
아름이 밥과 물만 겨우 채워주고 이불속에 파묻혔다.

얼마나 잤을까.

낑낑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름이가 베개 밑을 파고 있었다.
그리고 코끝에 비릿한 냄새—머리맡엔 아름이 사료가 있었다.


힘겹게 사료를 제자리에 두고 다시 잠들었는데, 또 낑낑.
눈을 뜨니 이번엔 사료가 더 많이 쌓여 있었다.
(이쯤 되면 ‘사료 정기 배송 서비스’였다.)


그제야 알았다.
아름이는 내가 아픈 걸 느끼고, “이거 먹고 힘내”라며 사료를 가져온 거였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세 번이나 버려졌던 작은 생명이, 나를 위해 이렇게 마음을 쓰다니.


아름이가 벌써 13살이 됐다.

함께한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예전처럼 달리지는 못하고, 눈가에는 흰 털이 조금씩 섞였다.

걸음은 예전보다 느려졌지만, 여전히 내 옆 베개에 와서 잔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방공호.
그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지킨다.

책임이라는 건, 내가 주는 게 아니라
같이 사는 동안 자연스레 서로 나누는 거라는 걸—
아름이가 가르쳐줬다.

내일도, 모레도, 이 방공호는 비상 대기 중일 것이다.
고독해서 그래.
그리고… 사랑해서 그래.


손끝에 닿는 털 한 올, 귓가에 스치는 숨소리 하나에도 ‘살아 있음’의 의미가 겹겹이 쌓인다.

우리는 서로를 지키며 여기까지 왔다.
내일도, 또 그다음 날도, 얼마나 더 함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고독이 너를 이곳으로 데려왔지만, 사랑이 우리를 끝까지 묶어줄 거라는 것.

오늘도, 내일도 건강하자~!



감성 에세이, 일상, 고독
EP.7《고독해서 그래》: 《사랑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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