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시모의 말 때문이라기보다 용옥은 길홍의 사업이 엎어진 이후로 줄곧 생각해 오던 그 일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
용옥은 벌써부터 동인천역 조흥은행 뒤편 골목에 있는 세탁소에 다림질할 일감을 부탁해 놓았었다. 혼인하기 전부터 간간이 해오던 일이었다.
주로 학생복의 카라와 신사복 샤쓰를 다리는 일이었다. 큰 돈이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내달이면 몸을 풀어야 할 처지에 더 큰 일을 맡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아기를 낳고 제대로 일을 하려면 지금부터 자리를 잡고 있어야 했다.
처녀적에는 경동집에 전기다리미가 있어서 일감을 집으로 가져다 했지만 지금은 세탁소로 가서 일을 해야 했다.
대서방에도 일자리를 부탁해 놓았다. 대필은 아기를 낳은 후라도 집에서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마침 길홍이 모셔놓은 타자기도 집에 있었다. 고 씨 남매들은 염전 일꾼들의 대서일을 봐주곤 했기 때문에 정작 용옥은 타자기를 쓸 줄 알았다.
친정에서는 그러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전기다리미를 보내주겠다고 하는 걸 용옥이 사양했다.
체면을 따지는 시가에는 일부러는 알리지 않았으나 알아도 그만이었다.
다만 길홍이 어떻게 나올지가 근심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만삭이 다 된 몸으로 나다니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언덕길이라 더 했다.
서너시간이라고 만만히 봤더니 서서 다림질을 하는 일도 생각보다 고됐다.
닷새 만에 세탁소 일을 알게 된 길홍이 아궁이에서 쪼그리고 찌개를 끓이는 용옥의 등 뒤로 연탄을 집어서 던졌다.
용옥이 차리다 만 저녁 상을 들어 부엌 벽에다 던졌다.
어디 속이 시원한가 보자고 한 일인데 커녕 치울 일만 걱정이었다.
불식 간에 일어난 일에 길홍이 주저앉을 만큼 놀랐다. 용옥은 태연히 끓이던 찌개에 넣던 파를 마저 넣었다.
길홍이 일어날 생각도 않고 주저앉은 채로 끅끅대며 울었다. 용옥이 눈물을 애써 삼켰다. 어차피 겪을 일이다 싶었다.
길홍은 그 길로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칠일 만에 서울 청계천에 있는 철강회사에 취직을 했다는 기별이 화평동 집으로 왔다. 방을 구하는 대로 용옥을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전하러 순자가 왔다갔다.
용옥은 방을 빼서 살림살이를 도로 화평동 시가로 옮긴 후 보증금을 찾아 길홍에게 보냈다. 그리고 경동 본가로 아기를 낳으러 갔다.
11월에 산과병원에서 여자 아기를 낳았다.
지 씨부인은 화평동으로 사람을 보내 삼칠일이 될 때까지 방문을 받지 않겠노라고 정중히 일렀다.
그래서 길홍도 시가식구도 다녀가지 못했다.
순자만 고기와 생선을 들고 심부름을 몇 번 왔다 갔다.
염전 사무실로 길홍이 서울에 방을 구했다는 전화를 여러 번 했으나 용옥에게는 닿지 못했다.
해산을 한지 한 달이 됐을 무렵 길홍이 왔다.
아기를 받아 안은 길홍의 손등은 터지고 갈라져 있었다. 원래 곤색이었을 바랜 작업복도 터지고 갈라져 있었다.
얼마나 굶었는지 말린 민어를 넣고 끓인 미역국과 쇠고기 구이로 차린 상을 받은 길홍이 숟가락을 얼른 들지 못했다.
움푹 패인 시커먼 볼이 움찔움찔하더니 쑥 들어간 눈에서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길홍이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흐느끼며 말했다.
"당신만... 잘 먹고사나...?"
용옥은 그 길로 아기를 얼싸안고 길홍을 따라나섰다.
백일이나 지내고 가라는 지 씨부인의 만류도 소용이 없었다.
살림살이나 먼저 보내고 가라는 시모의 만류도 소용이 없었다.
용옥의 맏아우가 세 발짜리 오도바이용달을 끌고 와 아기짐을 싣고 곤로와 석유 두 통을 실었다.
그렇게 도착한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2동의 273-90번지에 자리를 잡고 아이 셋을 키우는 동안 길홍은 한 번도 돈 벌어오는 일을 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