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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대신비 Nov 11. 2024

나른한 시대는 끝났다

행복이라는 당번 따위 없는


손가락 늘어뜨리고 한가롭게 누

나른한 시 쓸 수 있는 시대는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순수서정시만으로 배부른 시절은

이미 오래전 끝났던 것이다.


생명이 세계와 연결된 후로

인류가 전쟁 시작한 후로

문명과 야만의 싸움 시작된 후로


생은 길,

지성이 반지성 물리치며

길 위에 올라 선 후로.


그러니 사람이여,


시나 소설 쓰는 일이란
책 만드는 일이란
그 책 사는 일이란
인간이 각종 예술 행위 하는 일이란

얼마나 그리운 일인가.

또 눈물겨운 일인가.


행복이라는 실재하지 않는

희미한 가상현실은

철학하는 자가 떠올릴만한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전장에 핀 한 송이 들꽃

총성 울리는 지옥 한가운데서

하늘 보고 누워 한 줄기 바람과 키스하는 것


우리는 그저 오늘 하루라는 수프를

몽글하게 데워 낼 수 있을 뿐이다.


저 너머라는 미지와 매 순간

아스라하게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순간이라는 섬광과

번득이며 조우할 뿐이다.


생은 예술,

순수 서정이 아니어도 좋다.

순간을 혁명하는 그런 이름

하나 둘 떠올려 보자니

마치 따끈따끈한 경단 굴리며
은하수 따라 알 낳으러 가는

쇠똥구리가 된 기분이다.

아니, 피투성이로

이제 막 바닷가 무덤 같은 알에서 깨어나

저 대양 향해 질주하는
아기 바다거북이 된 기분이다.

적진 속에서 소리 없이 날아 먹잇감 낚아채는  

수리부엉이 된 기분이다.


시 속에서 삶 그 자체가 되어
할머니 무릎 베고 누운 아이

그 배 가만가만 쓸어주는

거대한 손이 된 기분이다.


내 손이 약손이다,

할머니 자글자글한 주름 사이 스며있는
짧은 한숨과 온기 된 기분이다.

온몸 펄펄 끓는 이의 머리 짚어주는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된 기분

어느 가슴 무너진 인간 넉넉하게 안아주는
'포옹'이 된 기분이다.

제아무리 독하게 쓰러져도

누구도 찾으러 오지 않는다는 진실 깨달은
텅 빈 운동장에서 마침내 우뚝 일어선 아이의


'근육'이 된 기분이다.

이제 더는 울며 엄마 찾지 않는 아이

그리고 지구 사이의 팽팽한

'중력'이 된 기분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날마다 묻고 또 묻는

잠든 인류에게 길 물으며 저를 두드려 깨우는

늙은 예술가가 된 기분이다.


또,


인생이라는 교탁 앞에 출석부 들고 서 있는
담임이라도 된 기분이다.


우리 반 이름은

[살아 있음이 곧 기적]이다.


행복이라는 당번 따위 없는

정의라는 반장도 없는

평화라는 교훈조차 없는.









"자, 보자.
오늘 출석 좀 불러 볼까!"


결석한 사람 손 들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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