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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Nov 29. 2024

『보이지 않는 삶』

『EUFIDICE OF GUSMAO 』 브라질 마르타 바탈랴 소설

이 책의 원제목은 『EUFIDICE OF GUSMAO 』이다. 브라질 마르타 바탈랴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2019년 〈이니저블 라이프 Invisible Life〉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었다. 


작가는 독자에게라는 글에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들은 대부분 실제로 일어난 일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고 한다.     


소설은 20세기 중반 리우데자네이루를 배경으로 스페인 독감으로 스러진 사람들의 시신이 리우데자네이루 골목 어귀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때부터 시작한다.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에우리지시와 그의 언니 기다는 상반된 성격을 가졌고, 인생 여정도 다르다. 사랑을 좇아 가족을 떠난 기다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후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홀로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강인하게 자신의 삶을 일궈나간 이 두 여성은 사회로부터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의 욕망은 보이지 않았고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며, 그들의 인생 역시 중요하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주변 인물로 등장하는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여성들’의 이야기도 있다. 백인 중산층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삼인칭 화자의 묘사 방식에서 젠더 문제를 넘어서는 브라질 사회의 뿌리 깊은 다층적 차별을 엿 볼 수 있다. 지구 반대편의 반세기 전 모습에서 지금의 우리 모습을 비추어 보고, 보편적인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     

주인공 중 에우리지시 구스망은 안테노르 캄펠루와 결혼한다. 안테노르는 은행원이다. 첫날밤 안테노르는 에우리지시에게 처녀흔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타박한다. 이 타박은 결혼생활 평생 이어진다. 에우리지시는 똑 부러지는 여자다. 잘 계산된 수치 몇 개만 가져다준다면 교량 하나 정도는 혼자서도 뚝딱 설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실험실에 자리 하나만 내준다면 백신이라도 발명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 남편과 사회, 제도 속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현모양처만 허용된다. 에우라지시는 어렸을 때 플르투를 연주하는 학원에 갔다. 플르투를 완벽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본 음악학교 교사가 에우라지시를 음악학교에 진학하도록 하지만 부모의 반대로 포기한다. 결혼 후 재봉틀을 사서 디자인을 하고 옷을 만든다. 너무 잘 만들어서 소문이 나고 집에서 이웃들의 옷을 만들어 준다. 이것도 남편의 반대로 못 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에 몰두한다. 결국 예술인촌으로 이주한다. 대학도 다닌다.    

 

인생이란 이것뿐일까?라는 질문을 끊임 없이 던졌다. 한 눈으로는 아이들의 숙제를 도왔지만, 다른 한 눈으로는 이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이 오면 어떡해야 할까?라고 자문했다. 한 눈으로는 이야기책을 읽으며, 다른 한 눈으로는 학교 교복, 필기 내용 암기, 동화 읽기 같은 것 너머에 다른 인생이 있을까? 라는 생각도 했다.     


그녀는 관을 보러 다니기도 했다. 금색 손잡이가 달린 밝은색 나무 관을 봐두었다. 아무 무덤에나 묻히기 싫어서 카주 공동묘지에 할부금을 내고 있기도 했다. 인생이 자신에게는 한 번도 웃어주지 않았지만, 적어도 죽음만은 자신을 좀 더 낫게 대우해 주길 바랐다.      


세상 사는 것은 브라질이든 대한민국이든 같다. 평범한 이웃과 동네, 그리고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아낙네가 꼭 있기 마련이다. 에우라지시 이웃에 사는 젤리아도 같은 유형이다. 젤리아의 끝없는 불만족은 외모까지 바꾸어버렸다. 호박 껍질을 자르기 위해, 하수구를 뚫기 위해, 높은 곳에 있는 찬장을 닦기 위해 젤리아는 얼굴을 찡그리곤 했다. 그 표정을 짓기 시작했을 때는 그녀의 젊음과 어울리지 않았지만, 점차 자기 얼굴 그 자체가 되어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젤리아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외모가 못나서 성격이 비뚤어진 건지, 성격이 비뚤어져서 외모도 못나진 건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에우리지시는 공허한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다, 거실로 눈을 돌려 책장 앞 장식장에 시선을 고정하곤 했다. 그녀의 우울은 조금 나아지는 듯했으나, 더 심해지고 말았다. 집은 다시 조용해졌고, 하루가 평소보다 더 길어졌다. 안테노르는 직장이 있었고, 다스 도리스(하녀)는 청소 일이 있었고, 아이들은 인생을 온전하게 가졌다. 하지만 에우리지시에게는 무엇이 남았단 말인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사람사는 곳은 비슷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소개.     

『보이지 않는 삶』 마르타 바탈랴 지음. 김정아 옮김 2019.11.18. (주)은행나무. 238쪽. 13,000원. 

     

마르타 바탈랴 Martha Batalha.

1973년 브라질 해시피에서 태어났다. 브라질에서 저널리즘과 문학을 공부하고 기자로 일했다. 2008년 뉴욕을 이주 출판사에서 일했다. 『보이지 않는 삶』은 2019년 영화로 제작되었다.     


김정아.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교 건축학과에서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로 편입.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서과에서 국제회의 통역을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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