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극복 방법 '수면 위생' 실천 후기
불면증 극복 방법 '수면 위생' 실천 후기
예전에는 잠을 잘 자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우스웠었다. 밤에 잠이 안 오거나 자다가 자꾸 깨는 것은 영유아들이 겪는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내 세계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일이었고, 아기들 수면 문제로 고생하는 얘기를 주면에서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수면 문제를 생각하면 저절로 영유아들의 문제라고만 생각되었다. 성인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고, 나는 성인이고, 나는 잠자는 것을 매우 좋아하니까 '불면증'을 겪을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난 누우면 바로 잠에 골아떨어졌었다. 눕자마자 거의 의식을 잃었다. 잠자는 것을 매우 좋아해서 의식이 붙어있는 동안은 내내 '이따가 집에 가서 푹 자야지'하는 생각만 했었다. 곧잘 숙면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가장 기본적인 수면 조차도 노력을 해야 하는 지경이라니. 이런 것도 못 하는 내가, 내 몸이, 너무 미숙해 보였다. 꼴이 처량했다.
내가 도저히 잘 수가 없고 자다가도 눈이 번쩍번쩍 뜨게 되는 이유는 내 현실이 기가 막혀서였다. 갑자기 따악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눈동자가 튀어나올 정도로. 난데없이 당한 일이라 황당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바와 너무 다른 현실이라 믿을 수 없기도 했다. 그래서 아득 바득 기를 쓰고 부정하느라 편히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이것이 내게 벌어진 일인지, 내 현실인지, 정말인지, 그래서 정말로 정말인지 계속 생각했다. 믿을 수도, 받아들일 수도, 인정할 수 없어서. 그래서 잠이 오지 않았다.
깜깜한 밤에 내 몸뚱이가 침대에 초라하게 누워서 분노했다가, 슬퍼했다가, 절망했다가, 두려워했다가를 반복하다 보면 기가 쏙 빨린다. 내 영혼은 피와 살이 다 말라버려서 미라처럼 되고 만다. 그러면 그때 겨우 잠에 드는 거다. 지쳐 쓰러져서 자는 거다.
하지만 몸뚱이가 지쳐 자는 와중에도 뇌는 여전히 분노하고 있고, 슬퍼하고 있고, 절망하고 있고, 현실을 세차게 부정하느라 나를 가만히 자게 놔두질 않는다. 온몸의 세포들을 흔들어 깨운다. 그러면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번쩍 뜨며 잠에서 깬다. 잠에서 깨자마자 다시 열심히 성실하게 분노하고, 슬퍼하고, 절망한다. 기가 막힌 인수인계가 이루어진다. 그렇게 깜깜하고 암담한 밤 동안 깡깡대며 난리 브루스를 치고, 지쳐서 잠들고, 다시 깨어나서 깡깡 난리난리 쌩난리를 친다. 열 번은 넘게.
아무튼 나의 문제들 혹은 심리상태를 해결해서 마음이 평온해져야만 이 진절머리가 끝이 난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 그동안 그 어떤 피상적인 해결책이라도 써서 잠을 잘 자고 싶었다. 그중 하나가 '수면 위생'이었다. 에린이 보내준 자료를 보니 겨우 한 페이지밖에 되지 않았고 실천 방법들도 매우 간단해 보였다. 사실 너무 간단해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심했다. 내가 처참하게 싸우는 밤에 비해 해결방법들이 너무 간단해 보였다. 별로 시도해보고 싶은 의지나 욕구도 안 생겼다. 하지만 2주 후 만날 에린에게 '해 보긴 해 봤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일단 미심쩍은 마음으로 시도는 해 보기로 했다.
'수면 위생'에 대한 자세한 소개와 방법은 저의 이전 글 '불면증 극복 방법 1. 수면 위생 Sleep Hygiene'에 나와 있습니다. https://brunch.co.kr/@5b99714b79f941d/15
실천 후기
1. 침대에는 잘 때만 눕기. 뇌가 침대를 '잠자는 공간'으로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그럴싸했다. 그래야만 자려고 누웠을 때 더 쉽고 자연스럽게 잠이 든다고 한다. 난 사실 낮에도 저녁에도 침대에 반쯤 누워서 생활했었다. 일어나고 싶지도 않았고, 몸은 늘 피곤했고, 이놈의 세상은 짜증 나고, 내 현실은 개떡 같으니 그저 힘 없이 누워만 있었다. 책상에 앉아서 일하다가도 20-30분이 지나면 에라이 하고서 툭하면 침대에 가서 누웠다. 가끔은 미팅도 누워서 했다. 카메라 끄고서. 그런데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 9시까지는 최대한 책상에 앉아 있으려고 노력한다. 이 노력을 해서 밤에 잠을 잘 수만 있다면, 미치겠는 생각들의 구덩이에 빠지지 않고 밤을 기절한 상태로 보낼 수만 있다면, 뭐든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제는 일도 책상에 앉아서 하고 (당연한 소리지만), 저녁에 글을 쓰거나 이직 준비를 할 때도 책상에 앉아서 한다.
2. 밤에는 불빛을 약하게 하기. 미국 집에는 전등이 천장에 붙어있지 않다. 적어도 보스턴은 그렇다. 그래서 스탠딩 램프가 꼭 필요하다. 나는 방이 쨍하고 밝은 것이 좋아서 스탠딩 램프가 세 개나 있다. 사실 한 개 더 사고 싶은데 작은 스튜디오 방 안에 스탠딩 램프 네 개가 있는 건 램프에 환장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서 자제하고 있다. 아무튼 밤 10시 반 이후에는 침대 옆 램프만 빼고서 나머지 두 개의 램프는 꺼서 방의 불빛을 약하게 한다. 나의 몸과 뇌가 서서히 스위치를 끄고 잘 준비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3. 커피는 오전에만 마시기. 나의 불만족은 입으로 끊임없이 들어가는 음식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마음이 온전치 못할 때는 끊임없이 처먹었다. 하지만 계속 처묵처묵 하는 것은 죄책감이 크기 때문에 커피를 하루 종일 홀짝거리게 되었다. 나름 신경을 쓴다고 오후에는 디카페인 커피를 먹어왔었지만, 디카페인 커피에도 소량의 카페인이 있단다. 이제 알았다. 오후에 커피를 참는 것이 참 곤욕스럽지만, 그래도 나의 밤이 처절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이 곤욕도 참아보기로 했다.
4. 이어 플러그 하기. 이건 내가 읽은 수면 위생 방법에 나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 경험으로 얻은 방법이다. 일반화해서 말하자면, 본인의 수면을 방해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도구를 쓰기를 추천한다. 나의 경우에는 오감이 예민하기 때문에, 더욱이 지금처럼 큰 똥이 내게 떨어진 상황에서는 초초초 예민해지기 때문에, 잘 때 들리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날카롭게 깼다. 윗집의 발자국 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엘리베이터 소리에도 깼다. 그래서 이어 플러그를 하고 자기 시작했다. 귀가 가끔 답답하지만 그래도 도움이 된다.
5. 일관된 수면 시간 지키기. 규칙적이고 일관된 수면 시간을 유지하기 위해서 12시 취침, 8시 기상으로 정했다. 그래서 8시간은 잘 수 있도록. 잠에 드는 것도 힘들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든 나에게 12시 취침과 8시 기상이 얼마나 잘 지켜질지 모르겠다. 그래서 최대한 위의 방법들을 해보고 12시에 꼴까닥 하고 잠들고 싶은 생각이다. 그리고 8시간을 자든 10시간을 자든 나에게 아침 8시에 일어나는 것은 매우 매우 힘든 과제이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는 법'을 몇 가지 강구해 냈다. 이 또한 곧 소개할 예정이다.
6. 나를 위로하는 말을 되뇌기. 한밤 중 잠에서 깼을 때는 내 인생이 망했고, 미래는 암담하고, 불안해 죽겠다는 극단적인 느낌이 나를 덮친다. 압도당해서 헤어 나오질 못하겠다. 밤은 사람을 참 약하고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으로 만든다. 희한하다. 낮에는 이 정도는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날뛰는 비이성을 잡아줄 만한, 나의 심장 저 끝까지도 위로해주는 말 한 가지를 찾아서 계속 되뇐다. 안정시켜주고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말. 그것이 나에게는 '두려워 말라. 무엇을 두려워하느냐.'는 성경 구절이었다. 나보다 더욱더 큰 존재가 두려워 말라고 하시니 믿어도 될 것 같았다. 내가 해결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다 맡아주시고 알아서 해주시겠거니, 하는 마음이 들면, 길길이 날뛰던 마음이 안정되었다. 종교, 멘토, 책, 가족, 친구, 그 무엇에서든 마취총 맞은 것처럼 나를 안정되게 하는 말 한 가지만 있다면, 잠 못 드는 밤 불안한 자신에게 계속 되뇌어주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