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틈으로 들어온 햇살만이 빈방의 바닥에 내려앉은 풍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비워진다는 것은 우리를 상념에 젖게 합니다. 언제나 무언가가 제자리를 벗어나서야 그 존재에 대하여, 그 빈자리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됩니다. 몇십 년을 함께 한 서재의 책장이 있었습니다. 빼곡히 꽂혀있는 책 한 권을 꺼내려 하니 지지대가 기우뚱하였습니다. 그 안쪽으로는 오랜 세월 키를 키워 온 듯한 금이 나 있었습니다. 너무 고단했던 그 책장을 그만 쉬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항상 있었기에 평소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언제나 나를 아늑하게 해 준 것 같은 그 책장이 사라지고 휑하니 비어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무언가가 내게서 빠져버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있을 때는 있는 줄을 모른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나 봅니다.
조그만 책장 하나가 그럴진대, 집안의 모든 사물이 빠져나간 모습을 본다면 그 허전한 느낌은 자못 클 것입니다. 언젠가 이사를 하던 날, 정들며 살았던 우리 집의 세간이 모두 비워져 창틈으로 들어오는 햇살만이 바닥에 내려앉은 풍경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나는 마루 한복판에 서서, 이 벽 저 벽을 타고 울려 퍼지는 가족의 웃음소리와 아이의 투정 소리, 아내의 토라진 말투 등을 듣고 있었습니다. 무정의 사물들조차 그 빈자리에서 생명의 흔적을 남기는데, 정을 가진 사람이 남긴 빈자리에선 훨씬 더 오래 남을 흔적이 두고두고 우리의 시선을 멈추게 할 것입니다. 나는 과연 나의 빈자리에서 어떤 의미를 남길 것인가….
제자리에서 사라진 책장이 내게 허전한 여운을 남기는 것은 내가 그 책장에 대하여 나도 모르는 정을 품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풍부한 감성의 이야기들을 내게 선사하는 보물 상자와 같이 휴일이면 언제나 내게 위안을 주었던 책장처럼, 나도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