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창공으로 열려있는 소년의 눈망울
지평선 위에서 펼쳐지는 소년의 가슴
태양에 꽂혀 있는 거목처럼
고개를 힘껏 젖혀도 닿지 못할
소년의 앞날들
언제부터인가
누군가가 그려놓은 영역을 범하지 못하고
창공과 지평선과 거목이
액자의 틀에 갇힌 사진처럼
작아진 것은
솔향 가득한 오월의 산을 오릅니다.
오솔길을 지키는 훤칠한 소나무가
오랜만에 나를 반깁니다.
이제 곧 봉우리에 서면
창공을 바라볼 것입니다.
저만치 지평선도 바라볼 것입니다.
조금만 힘을 내면 닿을 저 봉우리엔
벌써 한 소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만치 미소를 던지고 있습니다.
소년 시절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았습니다. 세상의 계단이 가파른 줄을 전혀 모르고, 이 세상 꼭대기에 마음 내키는 대로 미리 올라가 앉아 있었습니다.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에서 그의 어깨에 기댄 채 잠든 스테파니 공주를 지켜주는 목동의 밤과 같은 순수한 밤이 - 물론, 공주는 상상 속에 있고, 나홀로 지새우긴 했지만 - 있었습니다. 영화 제목인 Never Too Young To Die(너무 어려서 죽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가 가리키는 대로,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내 전부를 걸겠다는 호기가 있었습니다. 영화 플래툰의 주제가 부소대장과 분대장의 갈등을 통해 혼란 속에서 같은 편끼리 반목하는 인간사회의 부조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일라이어스 분대장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으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참 멋진 최후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지금은 스테파니 공주가 곁에 있어도 내가 먼저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 것 같고, 머지 않아 Never Too Old To Live(너무 나이가 들어 살 수 없는 것은 아니다)가 더 그럴법해 질 것이고, 일라이어스의 멋진 마지막 모습보다는 반스와 일라이어스의 대립과 갈등을 보면서 현실세계의 모습을 상기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그 장면들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의 작은 한편이 꿈틀거리는 것으로 봐서는, 그 어른이 소년의 가르침을 모두 잊어버린 것은 아닌 듯 합니다.
낯익은 봄이지만
함께 온 소망은
첫 만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