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이 공이 되더라도
힐링을 위한 여행이 스트레스 여행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스트레스 여행의 와중에도 부분적으로 즐거움을 얻기도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때로는 그야말로 뜻하지 않은 난관으로 일관된 여행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여행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의욕적으로 추진할 때, 뜻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하여 일을 벌이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휴일 아침, 평소에 산을 좋아하는 나는 갑자기 설악산 대청봉에 오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잔뜩 기대에 차서 바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지친 일상에 모처럼 활력을 주고 싶었습니다. 서울에서 차로 약 3시간 남짓 이동하여 오색분소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차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도 별로 없는 날을 잘 택해서 왔다는 어이없는 생각에 미소를 채 짓지도 못하고, 나는 오늘이 아직 봄철 산불예방을 위한 입산통제 기간 중이라는 안내표지를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여행 결정을 하고 바로 실행에 옮기느라 입산통제 가능성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 오늘 힐링이 제대로 될 것이냐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설악산은 대청봉과 같은 고지대가 아니더라도 가 볼 만한 곳은 있었기에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일단 한계령 휴게소까지 차로 이동했습니다.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용소폭포로 이동하기 위해 차 문을 열려는데, 차 열쇠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지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차 열쇠를 찾기 위해 휴게소를 샅샅이 수색해야 했습니다. 입산통제 안내표지를 볼 때까지는 평정심을 유지했지만, 그때부터는 머릿속이 뽀글뽀글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한참을 찾아보았지만, 소용이 없었고, 이미 나의 힐링 여행은 스트레스 여행으로 철저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해발 900m인 이곳으로 서비스 차량을 부를 수밖에 없다고 좌절하고 있다가 결국 가까스로 찾기는 했지만, 그때는 이미 내가 힐링이고 뭐고 한참 지쳐있었습니다. 지친 심신을 위로하기 위해 약수를 마시려고, 설악산에서 유명한 오색 약수터로 이동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물이 말라서 한 방울도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차 열쇠를 찾느라고 이미 상당한 시간을 소비했기 때문에, 나는 용소폭포 주변을 감상하다가 그만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은 그날따라 교통 체증이 무척 심했습니다.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면 차가 막혀도 대수롭지 않으련만, 머리가 뽀글뽀글해진 상태에서 차가 막히니, 제동기와 가속기를 번갈아 밟고 있는 오른발의 뒤꿈치가 무척이나 뻐근했고, 입에서는 지친 푸념만 흘러나왔습니다.
미국의 작가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고단한 삶을 딛고 다시 용기를 내어 기대에 찬 마음으로 망망대해에 홀로 나가서 그의 배보다 더 큰 청새치를 잡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다가 상어들에게 뜯기어 결국 허망한 청새치 뼈만 남긴 채 뭍에 이르게 됩니다. 바라던 휴식과 활력은 얻지도 못하고 오히려 축 처진 심신을 이끌고 집에 겨우 도착했을 때 나의 모습이 꼭 그랬습니다. 노인은 그의 오두막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며 그가 젊었을 때 머무르던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 꿈을 꾸었다지만, 나는 피곤함에 젖어 잠이 들어서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반야심경에 나오는 말로, 물질적 현상이 곧 공허함이고, 공허함이 곧 물질적 현상이라는 정도로 생각하겠습니다. 이는 여러 가지 의미로 각색해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충만함이 곧 허탈함이고, 허탈함이 곧 충만함이라거나, 어떠한 성과도 결국 무의미한 것이고, 어떠한 실패도 마냥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식으로…. 의도와는 정반대의, 오히려 떠나지 않은 것보다 못한 스트레스 여행을 다녀오거나, 의욕적으로 추진한 일이 실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상처만 안겨 주었을 때, 사람들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의미 있는 일들을 찾아내어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저 그 의도치 않은 결과에 대해 거친 말들을 쏟아내며 분을 풀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훈 거리를 찾아서 그런 어려움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오늘의 이 스트레스 여행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를 그만두고, 그저 색즉시공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일상생활에서 확인하였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떠한 일을 벌일 때 안 하는 것만 못한 결과가 흔히 발생한다는 사실 때문에 주눅이 들 필요는 없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요약하면 결국 색은 색이 됩니다. 의욕적으로 추진한 일은 오히려 나를 후퇴시키는 양상을 잠시 보일 수 있지만, 다시 언제든 어떻게든 무엇으로든 나를 한 걸음 앞으로 내딛게 하는 결과를 결국에는 남기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런 글을 쓰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수양하는 것도 일종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라는 점에서 이 역시 공즉시색이 아니겠냐고 생각하듯이 말입니다.
바다에서 돌아온 노인은 아마도 커다란 청새치보다도 귀한 것을 가져왔을 것입니다. 그가 살찐 청새치를 얻었다면 결코 가져올 수 없었을 것을. 물론 그 귀한 것도 결국에는 청새치 뼈와 같은 것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