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하나. 꽃잎이 하는 말, 지금을 멈추어 그것을 피워내라
그리스의 철학자 제논은 “날아가는 화살은 날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아주 미세하게 쪼갠다고 해도 흐름이 없는 순간은 존재하지 않음을 무시하고, 날아가는 화살을 보는 어느 한 점만을 생각한다면 그 점에서는 정지하고 있는 것이라는 역설적인 오류라고도 생각해 봅니다. 나의 삶을 길게 보면, 어디에서부터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겠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정지한 것처럼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 순간이 다음 순간을 위해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현재를 온전히 멈추어 그것을 살아내려고 합니다.
생각 둘. 삶의 등호 오른편에
무거운 가슴을 들고 그 앞에 섭니다. 그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백사장에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습니다. 파도가 밀려와 백사장에 덩그렇게 놓인 짐을 쓸어갑니다. 위로를 받기 위하여 무거운 가슴을 들고 왔지만, 그의 가슴부터 먼저 위로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시퍼런 가슴에는 얼마나 많은 짐이 잠겨 있는 것인지…. 얼마나 많은 사연이 이곳을 찾아와서 그에게 짐을 던져놓고 떠나갔는지 모릅니다. 그가 묵직한 이유는 그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무거운 가슴을 내보이지 않고 그저 먼 수평선까지 되돌아갈 뿐입니다. 이따금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서 그의 고단함을 느낄 수 있을 뿐입니다. 나는 오늘 그에게 또 하나의 짐을 던져주기보다는 나보다 더 말 못할 시간을 기약 없이 보내야 하는 그를 위로하고,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위로를 받으려 합니다. 나의 짐을 그대로 가슴에 품은 채로, 오히려 저 깊은 곳까지 더 밀어 내리는 방법을 터득한 채로 백사장을 떠납니다.
등호의 왼편에 ‘산다는 것’이 있을 때, 언젠가 그 오른편에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등호의 왼편에 ‘산다는 것’이 있을 때, 언젠가 그 오른편에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등호의 왼편에 ‘산다는 것’이 있을 때, 언젠가 그 오른편에 ‘버팀’이 있었습니다. 굴곡 사이로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어른의 표정을 보았습니다. 그 표정은 마치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행복은 우리가 그것에 무관심해졌을 때 온다”는 말을 생각나게 합니다. 아직은 잘 모르지만, 삶의 등호 오른편에 그저 ‘산다는 것’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생각 셋. 시간의 모습
그의 존재조차 모르던 한 아이가
동화 같은 세상에서 웃고 있습니다.
자전거의 페달을 밟노라면
어느덧 땅거미가 지는데도
그는 아이에게 아무런 말도 걸지 않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꽃처럼 피어나는 젊은이 앞에
그는 마치 굳어버린 듯
미동조차 하지 않고 버티어 섭니다.
아무리 힘주어 밀어보아도
끄떡도 하지 않던 그를 보며
젊은이는 처음으로 그가 궁금해집니다.
어느덧 똑같은 하루하루를 공회전하는
한 중년의 가장은 우연히
또각또각 소리를 내는 벽시계의 초침을 봅니다.
균일하던 심장박동이 숨 가쁘게 북을 칩니다.
찰나조차 쉬지 못하고
자신을 소진할 때까지
정해진 보폭을 옮겨야 하는
안쓰러운 운명의 초침이
그를 닮은 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머지않아
굴곡진 주름마저 희미하게 하는
늦가을의 오후 녘 햇살이
한 노인에게 내려앉을 것입니다.
그리고 벤치에 앉은 노인은
그를 옆자리에 가만히 앉히고도
아무럴 것 없는 미소를
그 옛날 한 아이처럼 건넬 것입니다.
생각 넷. 침묵
굴신운동의 정체를 알고 싶었습니다….
오늘도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갑니다. 아침 햇살이 미간 위에 내려앉습니다. 전단을 나눠주는 아주머니, 그 옆을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는 사람들이 보일 것입니다. 이제 곧 저기 모퉁이를 돌아 들어갑니다. 그러면 담벼락 아래서 담배를 물고 있는 사람이 보일 것입니다. 그렇게 내달렸지만, 항상 같은 길 위에 있는 느낌과도 같습니다.
찻길이 시끄러워도 그 느낌은 보통 소리 없이 다가옵니다. 나를 에워싼 침묵과 내 속에서 만들어진 침묵이 서로 겨루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불현듯 견뎌야 한다는 생각을 놓아버리니 견뎌야 할 대상이 허무하게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놓아버리니 탈출해야 할 대상도 더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육중한 침묵에 연일 희롱당하는 줄만 알고 있었는데, 내가 침묵을 희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굴신운동 : 차 바퀴가 회전할 때 나타나는 현상같이,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는 운동
생각 다섯. 시간의 음성
구름 한 점 없는 휴일 오후 녘의 가을 하늘
그 아래에
한 자락씩 희미해져 가는 산 너머 산들
그 뒤쪽으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숨죽인 마을
마을에 빼곡히 들어선 사람의 집들
그 속에
밀랍인형처럼 정지된 사람들
그 뒤로
도시를 관통할 전철의 달구어진 쇳소리,
그리고 성큼성큼
뒤엉켜 달려오는 경적 소리
시간은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설령 그 시간 속에 있는 우리가 지쳐 잠시 쉬어 갈 때도 시간은 언제나 다음을 문밖까지 끌고 옵니다. 시간은 때로 비정합니다. 아주 잠깐 고단한 심신을 그럭저럭 누이고 있는 우리에게, 별안간 일어서라고 소리를 질러댑니다. 시간은 기척 없이 움직입니다. 아무 징후도 느낄 수 없게 찾아와 일순간에 우리를 저만치 옮겨놓습니다.
생각 여섯. 하루와 삶
하루는 눈발처럼 내려와도
삶은 눈길처럼 꿈에 다가갑니다.
하루는 원의 궤도처럼 맴돌지라도
삶은 나선의 궤도처럼 꿈에 다가갑니다.
생각 일곱. 현재만을 위하여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하는 현재의 일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온전한 현재의 삶을 위한 시간의 영역 안으로까지 후회나 걱정이 들어서게 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합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정신과 의사인 구가야 아키라는 명상에 관한 그의 저서 <최고의 휴식>에서, “피로는 곧 뇌의 피로감이며 뇌가 지치는 이유는 과거와 미래에 얽매여 현재를 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로지 찰나를 살아가는 생물처럼 과거와 미래를 잊어보겠습니다. 어떤 현재에는 좋은 사람들과의 동행에서 행복을 느끼고, 좋아하는 취미생활에서 안식을 취해봅니다. 아무 후회도 없고 걱정도 없는 바보처럼 또는 선계의 신선처럼 그렇게 현재를 살아봅니다. 그리고 또 어떤 현재에는 힘들지만 나를 좀 더 근사하게 만드는 일에 열정을 피워봅니다. 미래를 위한 치열한 자신과의 싸움이 미래를 위하는 것임과 동시에 바로 현재의 나를 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결코,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이 아닙니다. 미래만이 있고 현재가 없는 치열한 도전은 고단함을 안겨줄 것이고, 미래를 위하되 현재가 있는 치열한 도전은 뿌듯함을 안겨다 줄 것입니다.
시시각각 현재와 미래를 과거의 퇴적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우리에게 어쩌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구분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미래의 어느 한 지점, 그것은 현재가 되어버리는 것을 채 음미하기도 전에 저 먼 과거 속으로 걸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생각 여덟. 어제에게 오늘에게 내일에게
지난봄에 그려본 겨울의 내가
겨울에 이른 나에게 말합니다
그래도 수고 많았어
어제에게 : 후회스러워서 할 수만 있다면 어떤 너는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런가 하면 힘든 순간마다 근근이 버텨내 준 너에게 고마웠다. 네가 다가오면 언제나 한동안 물끄러미 너를 바라보게 된다.
오늘에게 :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고 가장 중요하고 행복해야 할 시간은 바로 오늘이어야 하는데, 과연 내가 너에게 그것을 가져다주었는지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네가 생의 최고의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으려 한다.
내일에게 : 너의 모습이 어떨지 사실은 나도 궁금하다. 원하던 모습이 되어 있을지…. 아마도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그간 겪어왔던 내상의 흔적은 감추지 못하겠지. 그러면서도 더 멀리 있는 또다른 너에게 찾아가기 위해 지금처럼 분발하겠지.
몇 년 전쯤일까요. 지난날 어느 창가에서 불러내 보았던 내일의 내가 그에게 도달한 오늘의 나에게 이야기합니다. 자신을 아주 빼닮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조금은 늦었지만 나를 찾아서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다고. 여기서 멀어져가는 자신의 미래를 쳐다보며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이제 또 길을 떠나자고. 더 먼 내일의 내가 저기 있으니 마저 길을 떠나자고.
생각 아홉. 봄을 기다렸던 그때를
바보처럼 웃다가 이내 다시
정색하지 않아도 되는 날은
언제쯤 오려는가
한참을 웃다가도 저만치 안개와 같은 슬픈 장면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봄이 뒤늦게 찾아오면, 그 겨울 속에서 따스한 봄을 기다렸던 그때를, 내가 처음으로 삶을 믿었던 그때를 멈추어버린 한 줌의 햇살 속에서 돌아볼 것 같습니다.
생각 열. 해넘이
모두 내일의 나만을 설레며 기대할 때 나 여기 외로이 떨어집니다. 환생하듯 다시 일어설 나를 위해 고단한 몸을 움츠립니다. 지평선 뒤로 내던져져 한참을 웅크린 오늘의 내가 없었던들 그대들이 기다리는 눈부신 내일의 내가 있을 수 없듯이, 그대의 오늘과 내일도 또한 그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