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하나. 이타주의마저 이기주의라면
미세먼지용 마스크를 파는 사람이 미세먼지가 계속 심하기를 바란다고 해서, 그를 나무랄 수만은 없습니다.
이타적 행위를 하는 사람도 사실은 그 이타적 행위가 그에게는 즐거움이 되는, 즉 이기적인 행위를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독일의 철학자 임마뉴엘 칸트가 진정한 도덕적 가치가 있는 경우라고 언급한 것처럼, 남을 돕고 살던 사람이 그러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지만, 그런데도 남을 돕는 경우와 같이 순수한 의무감으로 이타적 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고, 의무감과 즐거움을 동시에 충족하기 위해 행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칸트는 순수한 의무감을 이기적 동기와 구별했지만, 그것도 결국 자신을 위한 -'자신의 즐거움을 위한'은 아닐지라도-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무이행의 ‘욕구’가 배제된 순수한 의무이행이 개념적으로 가능한지는 의문입니다.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극심한 혼돈상태에서 마치 아무런 욕구도 없이 기계적으로 또는 반사적으로 의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사실 그것은 그 혼돈상태마저도 이겨내는 의무이행의 강한 욕구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며, 욕구는 그것이 이타적인 행위와 관련될지라도, 본질적으로 ‘자신을 위한’을 개념 속에 어쩔 수 없이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생물의 이타적 행위도 그 개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확산을 위한 이기적 행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에게는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할 힘이 있다고도 하고, 헌혈이야말로 순수한 이타적 행위라고 생각하고 싶다고도 말하였지만, 헌혈과 같은 행위도 모종의 심리적 보상과 무관한 순수한 이타적 행위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이기적인 것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이고, 사회 발전의 원동력인 자유민주주의 체제도 이기주의에 근간을 두고 있으므로, 그것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이기적이라는 자체만으로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생각 둘. 별
밤하늘의 별들
고맙지만 닿지 못한
셀 수 없는 인연들
우연히 스쳐 지나간 곳에서 왠지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긴 여운을 느낀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의 주변에 늘 보이는 존재만이 인연은 아닙니다. 새봄이 오면, 미지의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이미 나의 인연이 되어 준 사람들만큼 소중한, 사실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지만 닿지 못한 인연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생각 셋. 외롭지도 못한 사람
안개 속을 헤매면 이상하다. 숲과 돌은 저마다 외로움에 잠기고
나무도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 혼자다.
- ‘안개 속에서’ 중에서 / 헤르만 헤세
사람들과 정겹고 진솔한 교제를 맺고 돌아서는 날에도 가끔씩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어차피 사람은 혼자다.’
내가 틀렸습니다. 사실 혼자조차도 아니니까요. 나라고 항상 내 곁에서 나와 함께 해주지는 않았습니다. 외롭다는 말이 나만이 내 곁을 지킨다는 의미라면, 사람은 외롭지도 못한 존재인가요. 그럴 바에야, 그 단어는 아예 지워버리겠습니다.
그리고 나처럼 외롭지도 못한 사람들을 내일도 만나러 가겠습니다.
생각 넷. 가을 저녁
하루가 눈높이로 내려와
나란히 걷는다
그대 옆을 그렇게 걷고 싶다
생각 다섯. 서로의 뒤편
한 발짝 뒤에서
서로를 돋보이게 하네
붉고 푸른 가을 나무들